국내최초 시네 라이브 '빨간 피터의 고백'

중앙일보

입력

‘빨간 피터의 고백(go back)’은 일반 극장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영화다.고(故)추송웅씨의 연극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그의 아들 상록씨(31)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 디지털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라이브 연주를 가미한 ‘시네라이브 형식’을 취한다.

국내 처음으로 시도한 시네 라이브는 보통 영화처럼 스크린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배경 음악은 록 밴드가 무대에 나와 직접 연주한다.영화를 보며 라이브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박진감이 한층 더하다.

인간이 되고 싶은 원숭이의 비애를 주제로 한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은 프란츠 카프카의 산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를 토대로 추송웅씨가 직접 연극 대본으로 각색해 연출·연기 등 1인 6역을 해냈던 작품.1977년 무대에 올려져 15년 동안 장기 공연했다.

영화 ‘빨간 피터…’는 원작에서 인물과 주제만 가져왔을 뿐 이야기와 형식을 파괴해 새롭게 꾸몄다.

인간에 대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방황하던 사육 보조사(추상록)에게 동물원의 침팬지 우리를 청소하는 일이 맡겨진다. 그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디엔가 탈출구가 있으리라 믿고 그 곳을 갈구하는 인물.

어느날 동물원에 피터라는 침팬지가 들어오는데 사육 보조사는 피터를 보자 자신과 침팬치를 동일시하는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이 착란 증세는 보조사가 탈출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어느날 침팬지 피터가 된 몸으로 잠에서 깨어난 보조사는 동물원 우리 속에서 과거의 여인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삶의 탈출구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실제 인간처럼 행동하는 능력을 지닌 피터가 정작 인간이 되고자 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절망했던 연극 속 피터의 절규가 현대인의 초상이었다면 탈출구를 찾아 헤맨 사육 보조사의 모습 또한 현실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영화는 인물의 설정이나 시·공간의 이동을 마구 섞어놓아 다소 난해한 면이 없지 않다.이에 대해 추상록씨는 “영화 속에서 설명을 상세히 하지 않은 것은 해석을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추씨 외에 그의 동생인 영화배우 추상미가 동물원에 놀러온 학생으로 출연하고 박광정·이혜은·유준상·김태균 등 낯익은 연기자들이 기자·아내·의사 등의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끈다.

고 추송웅 15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추상록·추상미 등 자식들이 주축이 돼 제작한 이 영화는 서울 서교동에 문을 여는 극장 ‘떼아트르 추’의 개관작이기도 하다.

이 극장 역시 자녀들이 아버지가 생전에 운영하던 연극 카페의 이름을 물려 받아 설립했다.뉴욕 주립대에서 드라마 석사과정을 수료한 추상록씨가 영화의 기획·각본·주연·연출을 맡았으며 무대 공연은 그룹 ‘록킹 시어터’가 맡았다.추씨는 이 그룹 멤버이기도 하다.

극장 개관은 4월 16일이지만 영화는 지난 13일부터 상영되고 있다.02-714-5597.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