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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1000만 클릭 소녀…"그래미상 받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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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가수 에일리(23·본명 에이미 리·한국명 이예진). 그를 두고 ‘혜성같이 나타난 신인’이라고 말하는 건 상투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재미교포 3세인 에일리는 올 2월 데뷔한 이래 가장 주목받는 ‘특급 신인’이 됐다. R&B 소울 장르의 데뷔곡 ‘헤븐(Heaven)’이 가요차트 톱순위에 한 달 이상 머물더니 이내 ‘노래 좀 한다’는 가수들이 발탁되는 가요 경연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자로 나섰다. 최근엔 유력한 신인가수상 후보로까지 꼽히고 있다. 아이돌 그룹, 대형 기획사, 댄스음악이라는 요즘 가요계의 흥행코드 하나 없이 스타 대열에 오른 비결은 대체 뭘까.

미국 NBC ‘머레이쇼’ 출연 시청자 투표 2위

[박종근 기자]

 스타는 마주하면 환상이 깨진다. 에일리도 그랬다. 무대 위 폭발적인 카리스마는 어디 갔을까. 수줍고 쭈뼛거리는 스물셋 아가씨만 눈앞에 있었다. 신인답게 이것저것 자기 얘기를 죄다 쏟아낼 줄 알았는데 웬걸. ‘그냥’ ‘별로’ ‘어쩌다’라는 어정쩡한 단어들을 내뱉다가는 결국 ‘제가 특별한 게 별로 없어요’란다. 하나 자고로 스타 탄생이 스토리 없인 이뤄지지 않는 법. 일단 분위기를 띄우는 질문부터 던져봤다.

●알아보는 분들이 많죠.

 “네. 그런데 기대하면 실망이 커서요. 그냥 기분 좋다, 그 정도?”

●그래도 데뷔하면서 결심이 대단했을 텐데요.

 “물론 꿈은 그때도, 지금도 그래미상을 받는 거예요. 못 이룰 가능성이 더 크지만 그래도 목표를 낮게 잡진 않아요. 그러면 마음이 너무 쉽게 해이해질 것 같아서요. 그냥 달려가야죠.”

 그는 데뷔 전 이미 ‘스타의 끼’를 보였다. 2008년 미국 NBC의 ‘머레이쇼’에 나가 리한나의 ‘언페이스풀(unfaithful)’을 불러 시청자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아시아계로는 처음이었다. 유튜브 세상에서도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2006년 ‘남들처럼’ 노래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이후 10여 곡의 신청곡을 꾸준히 올렸다. 그러다 2008년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hero)’를 부른 동영상은 특히 ‘대박’을 쳤다. 이후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는 동영상 평균 조회수가 30만 건을 넘으면서 모두 합치면 1000만 클릭을 넘어섰다.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를, 호기심 드는 가창력 덕분이었다.

●유튜브를 통해서만 노래를 부른 건가요.

 “아뇨. 대학에 들어가 한국계 2세들과 언더 활동을 했어요. 인디 레이블처럼 제가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래퍼, 누구는 스케줄 담당 식으로요. 뉴저지에서 주로 활동했죠.”

●그때 반응은요.

 “절 모르는 사람들 앞이었으니까 환호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일단 부르고 나면 놀라는 반응은 좀 느꼈어요. 쟤 뭐야, 뭐 그런.”

●유튜브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요.

 “노래로 경쟁한다는 게 전 싫더라고요.”

●언제부터 가수를 꿈꿨나요.

 “특별한 기억은 없어요. 언젠가부터 평생 노래를 하겠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죠. 대학(pace university)도 일부러 음대 말고 신문방송학과를 갔어요.”

●가창력은 누굴 닮은 건가요.

 “글쎄요. 아빠는 회사원이고, 엄마도 성가대 하시는 것 말고는 평범한 주부세요.”

핑클·SES 노래 제일 좋아해

 그즈음 세계 유수 기획사들이 그를 찾았다. 유니버설·워너뮤직·소니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꼭 한국에서 데뷔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지난해 현 소속사(YMC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고 한국에 홀로 왔다. 1년간의 연습생을 거쳐 지난 2월 앨범을 내놨다.

●한국 기획사에서 발탁했나 봐요.

 “아뇨. 기획사 사장님과 삼촌의 친구가 친했어요. 삼촌이 유튜브 동영상을 친구에게 알려주고 그렇게 건너 건너 2010년 가을 한국으로 오디션을 보러 왔죠. 빅마마 ‘체념’을 불렀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사장님이 같이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꼭 한국에서 데뷔하고 싶었나요.

 “아무래도 전 한국 사람이니까요.”

●미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지론에 열살 때는 한국에서 1년간 초등학교도 다녔고요. 말이 통하니까 K팝도 팝송만큼 즐겨 들었죠. 특히 핑클과 SES 노래를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가요도 처음엔 호기심으로 들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좋더라고요. 가끔씩 아직도 모르는 단어들이 있긴 한데 대체적으로 느낌은 알아요.”

●팝과 가요의 차이가 뭐던가요.

 “잘 설명할 순 없는데, K팝은 뭔가 끌리는 매력이 있어요. R&B는 굉장히 개인적인 소울 스타일에 감성이 강하다면 K팝은 한 나라가, 집단이 뭉쳐 있는 느낌? 저는 양쪽을 다 들으며 자랐으니까 제 음악은 앞으로도 두 장르가 섞인 노래가 될 거예요.”

● 데뷔가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해 늦었네요.

 “아주 빨랐을 수도 있었어요. 초등학생 때 한국의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하라고 연락이 왔어요. 제가 살던 곳이 한국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었는데 교회에서 제가 노래 잘한다는 소문이 좀 났었나 봐요. 그런데 그냥 거절했어요.”

●왜요.

 “때가 아니어서.”

●때라니요.

 “억지로 잡지 않아도 어찌어찌 자연스럽게 풀리는 시점이 있더라고요. 이건 이렇게 할 때가 됐다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 때요. 아니면 잘 안 풀려요.”

●후회하진 않나요. 보아처럼 대스타가 됐을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러고 보니 보아 선배님이 그 직후에 데뷔를 하긴 했네요.”

●뒤늦게 한국에 와서 연습생이 되니 어땠나요.

 “힘들긴 한데 재밌었어요. 한국 문화 익히고 숙소 생활하면서 다이어트도 했죠. 6~7kg쯤 뺐어요.”

●그때 (얼굴을) 고치진 않았나요.

 “아뇨. 쌍꺼풀 수술은 하고 싶었는데. 가끔씩 눈이 부으면 한쪽씩 없어져요. 그럼 오랫동안 안 생기니까 좀 불편하죠(웃음).”

무대에선 전혀 떨지 않는 ‘강심장’

 에일리는 성대한 신고식을 치렀다. 데뷔 앨범은 2월 발매 직후 멜론·엠넷·벅스뮤직 등 음원 차트와 라디오 방송 횟수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한 달 뒤 대표 아이돌 그룹인 빅뱅과 미쓰에이가 새 음반을 냈지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국내 최대 음악사이트인 ‘월간차트’에서 3월 내내 2위를 지켜냈다. 이후 앨범 활동을 접고도 방송 활동은 꾸준하다. KBS-2TV ‘불후의 명곡’에 고정 출연해 매주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요계 전설의 노래를 재해석해 경연을 벌이는 프로그램에서 그는 두 번이나 우승을 했다. ‘반전 소녀’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기실에선 앳된 소녀 같지만 무대에만 올라가면 객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고민구 PD는 “에일리의 첫 무대가 패티 김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선배 가수들도 의미 있는 녹화라 긴장했는데 에일리는 전혀 동요가 없었다”고 기억했다.

●옛날 가요를 부르는 게 쉽진 않을 텐데요.

 “원곡 자체를 모르니까 편곡한 걸 그대로 받아들여요. 원곡을 너무 들으면 벗어나기도 힘들고요. 나중에라도 원곡은 잘 안 들어요. 편곡 멜로디가 나오면 연습할 시간이 이틀이 채 안 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가사를 다 못 외우면 프롬프터 보고 부르기도 해요. 지금까지 아마 ‘아침이슬’이랑 ‘인연’ 빼곤 다 틀렸을 거예요. 뻔뻔해서 잘 넘어가는데 잘 찾아보면 (틀린 부분) 다 나와요(웃음).”

●무대에 서면 긴장이 되지 않나요.

 “별로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사람들 앞에 보여주고, 사람들이 제 노래에 와닿는 표정을 지어줄 때 너무 행복하죠. 전 노래하면서 관객들과 눈을 하나하나 맞출 수 있거든요.”

●그래도 어려웠던 무대가 있었을 텐데요.

 “현철 선배님의 ‘싫다 싫어’요. 멜로디가 굉장히 특이하더라고요. 트로트다 보니까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신곡은 언제쯤 나오나요.

 “2집 앨범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어요. 8월 초쯤 나올 예정이고요.”

 그는 ‘아이돌 그룹 중 경쟁자는 누구냐’는 질문에도, ‘신인상 욕심이 없느냐’는 질문에도 즉답을 피했다. 대신 비욘세 얘기를 꺼냈다. “노래 잘 부르는 가수들이 많지만 저는 비욘세가 가장 멋있어요.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너무 좋아서 한다는 게 무대에서 딱 보이거든요.” 비욘세 노래 중 특히 ‘I Was Here’를 힘들 때마다 듣는다고 했다. ‘나는 여기에 있었다. 내가 이 땅에 있었다는 걸 어떤 방식으로 기록에 남겨야 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가사처럼 그 역시 노래로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단다. 그가 건넨 사인이 의미심장했다. ‘I was here, A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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