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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맞아? 백인男들, 갈비집서 장갑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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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2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고깃집에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미국 선주회사 직원들이 일을 마치고 회식을 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주로 자신들의 전통음식을 먹지만 회식 때는 한국 음식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거제=송봉근 기자]

임진왜란 때인 1594년 왜군을 따라온 스페인 출신 세스페데스 신부는 우리나라에 온 첫 서양인으로 기록돼 있다. 400여 년이 지난 2012년, 우리나라가 외국인 126만 명 시대를 맞았다. 전국에 외국인 밀집촌이 생기면서 300명 이상 외국인이 사는 읍·면·동이 103곳이나 된다. 본지는 ‘외국인 126만 명 1부, 글로벌 동거시대’ 시리즈(7월 10일자 1, 4, 5면, 11일자 8면)에 이어 전국 곳곳에 사는 외국인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2부 전국 글로벌촌을 가다’를 연재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프라이언 호넷(35)은 경남 거제시민이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선박 운항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모집하자 일자리를 찾아 미국에서 건너왔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8월 노르웨이의 시추선 운영회사 송가 오프쇼(Songa offshore)로부터 2조6000억원에 수주한 시추선 4척의 운항 소프트웨어 설치를 맡고 있다. 송가 측이 시추선 소프트웨어의 국제 표준화를 요구하자 이 분야 전문가로 채용된 것이다.

 시추선 4척을 건조하려면 3~4년이 더 걸린다. 그래서 호넷은 올 2월 거제에 오면서 부인(32), 쌍둥이 아들(3), 딸(7)을 데리고 왔다. 호넷은 “2008년 삼성조선소에서 일할 때는 혼자 왔었다”며 “그때 도시가 아름답고 안전해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대우조선해양 내 선주회사 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노르웨이 출신 몰텐 요한센(40)도 송가에서 파견한 40여 명의 엔지니어 중 한 명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시추선 4척을 완성하는 2015년까지 건조 공정을 검사한다. 요한센은 “현재 사귀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가가 사고를 대비해 가입한 보험회사에서도 직원 5명을 보내 검사를 돕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덴마크나 노르웨이 등 북유럽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대우조선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은 66개국 2989명이다. 바로 옆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도 17개국 1707명의 외국인 직원이 있다.

 혼자 온 외국인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지만 가족과 함께 오면 아파트나 일반주택에서 산다. 주로 옥포·장평·고현동 등에 외국인 주거지가 몰려 있다. 나라별로 결속력이 강해 핼러윈데이·성탄절에는 집에서 파티를 열거나 한국 내 여행을 같이 가기도 한다. 옥포동에는 노르웨이 커뮤니티 센터가 있을 정도다. 노르웨이에서 온 에릭 로렌손(41)은 “나라별 커뮤니티가 여러 곳 생겨 정보도 주고받고 타향살이에 대한 고충도 나눈다”고 말했다.

 현재 거제시 인구 24만2971명 중 등록 외국인은 3.6%인 8805명이다. 대우와 삼성에서 해양플랜트 수주가 활발해지면서 2003년 1950명에 비해 네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거제시 관계자는 “단기 거주자와 음성적으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까지 포함하면 거제 거주 외국인은 1만5000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김유석(30) 홍보 담당자는 “유럽계 외국인은 해양플랜트 수주가 활발해지면서 늘고 있고 동남아 근로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면 월급이 몇 배가 오르기 때문에 이곳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외국인 직원 자녀들이 다니는 옥포국제학교 각 반에는 학생들의 출신지와 얼굴을 표시해 놓은 지도가 한 장씩 걸려 있다. [거제=송봉근 기자]

 출퇴근길 조선소 인근 옥포 국제학교에는 자녀들을 데려다 주거나 마중 나온 외국인으로 북적된다. 1985년 만들어진 이 학교는 2002년 경남도교육청에서 정식 인가를 받아 유치원부터 중학교 과정까지 운영한다. 외국인 주민이 늘면서 정원이 항상 넘친다. 그래서 현재 165명인 정원을 9월부터 249명으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김정은(38·여) 옥포국제학교 행정실장은 “국내인들도 입학 문의가 많지만 외국인 자녀만으로도 포화 상태여서 학교를 확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오후 5시가 넘으면 옥포동 번화가는 일을 마친 외국인들이 쏟아져 나와 외국인 거리로 바뀐다. 술집이나 바(BAR) 앞에는 ‘FOREIGNER’S CLUB(외국인 전용 클럽)’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특정 국가명의 음식점과 가게도 즐비하다. 일부 술집은 특정 국가 외국인 손님을 위해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고 해당 국가의 음악을 튼다. 외국인들은 이런 바를 ‘노르웨이 마을’ ‘덴마크 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브라질에서 온 카를로스(42)는 “음식과 술이 입맛에 맞아 고국 사람들과 한국식당에서 자주 회식을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사이에 인기 있는 한국 음식점은 갈비전문식당인 ‘뼈대일주’다. 외국인들이 장갑을 끼고 등갈비를 뜯는 이색적인 모습을 마이클 잭슨의 흰 장갑에 빗대 입소문을 내자 주인이 찾기 쉽게 잭슨 사진을 여러 장 입구에 붙여 놓기도 했다. 옷가게를 하는 김수희(40·여)씨는 “저녁에는 외국인이 넘쳐 유럽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거제=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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