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 추락 … 미·독 글로벌 표준금리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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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은행간금리(리보) 조작 파문이 정치 이슈로 떠올랐다. 영국 의회가 관련자를 줄줄이 청문회 증언대에 세우고 있다. 마커스 에이지어스 바클레이스 회장이 10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한 뒤 의사당을 나서고 있다. 이전에도 그는 의회에 불려나가 의원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렸다. [런던 로이터=뉴시스]

리보(LIBOR)는 영국 런던은행간금리다. 1984년 탄생 이후 세계 금융시장 표준이었다. “금본위제의 금과 같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런 리보의 신뢰와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보의 신비감이 깨졌다”고 10일 평했다. 조작돼서다. 영국 대형 은행들이 글로벌 신용경색이 시작된 2007년 8월 이후 자사들이 부담한 금리를 낮춰 은행연합회에 보고했다. ‘고금리=자금난’이던 시절이어서 일부러 낮춰 제출한 것이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국 금융감독청 조사 결과 2년 넘게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바클레이스는 한술 더 떴다. 리보 조작을 통해 돈을 벌었다. 트레이더들과 은행 제출 담당자가 짜고 자금 조달 금리를 낮춰 보고했다. 덕분에 바클레이스는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 거래에서 큰돈을 벌었다. 바클레이스가 벌금으로 2억9000만 파운드(약 5141억원)를 내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 이상을 벌었으니 그 정도 벌금을 내겠다고 한 것 아닐까”라고 가디언지가 의문을 제기했다.

 글로벌시장에서 350조~600조 달러(약 39경9000조~68경4000조원)에 이르는 금융계약이 리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단순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스왑션(스와프+옵션의 합성계약) 같은 신묘한 금융상품까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파생상품 가격을 분석하기 위해 리보마켓모델(Libor Market Model)이란 이론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영국은 리보 덕분에 세계 최대 채권·파생상품 시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영국을 질시해 온 미국과 독일 등이 요즘 앞다퉈 리보 조작을 비판하고 있다. 리보의 위상을 흔들어 자국 기준금리를 새로운 표준으로 세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시장은 미국이 제시하는 재무부 채권금리나 독일이 밀고 있는 유리보(유로화 리보금리)를 선뜻 표준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WSJ는 최근 전했다. 두 금리가 최근 위기 때문에 너무 낮게 형성돼 시장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표준 없는 글로벌 시장이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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