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어린 부잣집 막내딸인데 안 미운 그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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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윤진이

그녀는 침입자다. 40대 남자들이 주인공인 어른들의 연애에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직구를 던지는. 사랑하는 오빠 품에 달려가 안기기를 주저하지 않고, 불혹 넘긴 오빠의 생일 잔치에서 “촛불 끄고 소원 빌자”는 ‘유치한’ 그녀의 이름은 임메아리. 17세 차이 나는 오빠의 친구를 열렬히 사모하는 20대 여성이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 속 주인공은 분명 도진(장동건)과 이수(김하늘)인데 “솔직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메아리 때문에 본다”는 ‘메알앓이’가 부쩍 늘었다. 신인배우 윤진이(22)는 이런 캐릭터로 안방극장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스스로 “연기에 대해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하는 딱 그만큼, 그녀의 연기에는 날 것의 싱싱함이 있다.

 메아리가 침입한 세계는 어떤가.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마음 한 번 제대로 고백 못한 이수, 이수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선 잠시 흔들리는 태산(김수로), “(자존심 상하는 상황을) 다 받아줄 만큼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며 이수에게 매몰찬 도진. 이 어른들은, 사랑과 헌신 전에 ‘내가 다치긴 싫다’는 계산을 하거나 ‘다치지 않을 거다’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한다. 우리에겐 그 계산이 너무나 당연하다. 수많은 상처를 주고 받으며 마흔이 됐는데, 그런 계산을 하지 않는 게 더 바보 같지 않은가.

 그런데 메아리가 나타났다. 예쁘고 어린 부잣집 막내딸인데 밀고 당기기라는 연애의 기본공식마저 버린 이 발랄한 여자는, 그저 사랑한다 말하고 들이댈 뿐이다. 보통 드라마 속 ‘부잣집 딸’ 캐릭터가 세상물정 모르거나, 아주 못되게 그려졌다면 메아리는 다르다. 눈치도 빠르고, 싫어하는 사람을 골탕먹일 줄도 안다. 이렇게 사랑스런 부잣집 딸이 근래 있었던가. 계산하고 싶지 않아진다.

 사실 메아리처럼 해본 여자들은 안다. 남자들은 대개, 그런 여자를 보면 고맙게는 생각해도 간절히 여기지는 않는다는 걸. 실제 연애의 현장에서 메아리처럼 굴면, 돌아오는 건 정말로 메아리뿐이라는 걸. 잡힐 것 같지 않았던 여자(박주미)만이 남자들에게 사랑의 원형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메아리는 ‘오빠들의 로망’이라기보다 ‘언니들의 판타지’다. ‘들이대 쟁취하기’는 이루지 못한 꿈, 앞으로도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자고로, 남자보다 여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할 때 더 잘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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