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 맛탐험 끝에 ‘이거다!’ … 독창적 한식으로 세계 향해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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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기차나 허름한 민박도 괜찮다. 단, 식사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에서 한다.’ 임정식(34) 셰프가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하고 유럽을 찾았을 당시 정한 규칙이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그가 한 달간 유럽 4개국을 다니며 먹는 데 투자한 돈만 3천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타 셰프와 그의 요리를 음미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스타 셰프의 맛집’. 이번에는 ‘뉴 코리안 다이닝’을 선보이고 있는 임정식 셰프와 그의 레스토랑 ‘정식당’이다.

‘뉴 코리안’이라는 자신만의 요리 스타일을 선보인 임정식 셰프. 신사동 ‘정식당’에 이어 지난해 가을 뉴욕에 레스토랑 ‘정식’을 열고 자신의 요리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CIA 졸업.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견습(스타지에·Stargier) 생활. 뉴욕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한식 레스토랑 운영. ‘스타 셰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임정식 셰프 앞에 붙는 경력은 화려하다. 그러나 그가 요리에 눈을 뜬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군대 시절, 섬에서 복무를 했는데 부대원들이 돌아가며 요리를 했어요. 그때 난생 처음 칼을 잡았죠. 제가 하는 대로 요리가 되는 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소대장님이 ‘맛있다’며 고정으로 요리를 시키셨었어요.” 그는 “이때부터 요리에 미치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 님의 반대에 부딪혀 미국으로 어학 연수를 떠났다. 귀국 후에도 여전히 반대하던 아버지는 요리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한 아들을 보며 결국 “하려면 제대로 하라”며 허락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낮에는 요리학원을 다니며 요리자격증 취득을 준비했고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음식점과 떡집에서 일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그는 CIA 입학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CIA 재학 시절에는 수업보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요리를 해주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내 요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러한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뉴욕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도, 지금도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식사를 챙긴다. “뉴욕의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는데 그곳은 스태프 식사용으로 365일 소금 간을 한 닭다리만 나와요. 그렇게 유명한 곳에서 스텝들의 음식을 제대로 챙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돈으로 재료를 사서 요리했어요. 사실, 셰프님과 동료들에게 제 요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1 부드러운 식감의 초콜릿을 장독 모양으로 만든 ‘합천의 여름’ 2 항정살을 콩피·스모크·시어의 3단계로 조리한 ‘항정살’

미슐랭 가이드 들고 유럽 20곳 식당 맛봐

뉴욕 생활을 마무리한 그가 향한 곳은 유럽이었다. 목적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의 요리를 맛보는 것이었다.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정장 한 벌을 구입했다. 그리고 한 손에 ‘미슐랭 가이드’를 들고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레스토랑 20여 곳을 찾았다. “한끼에 50만원을 훌쩍 넘는 요리를 먹었어요. 영국에서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의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 ‘르가보르셰’에 갔는데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허름한 곳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마음은 행복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 꿈이 생겼다. ‘열심히 노력해서 내 레스토랑을 열자.’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직장을 다니며 전국의 맛집을 찾아 다녔다. 식당 한 곳에서는 한 개의 메뉴만 맛 봤다. 1주일에 15곳의 맛집을 들를 때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뉴욕을 거쳐 스페인으로 향했다. 뉴욕과 스페인에서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2개, 3개를 받은 레스토랑에서 견습 생활을 했다. 유명 레스토랑들은 견습 프로그램을 신청한 후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알켈라레’를 비롯해 ‘주베르’ ‘바스크’ 등에서 일했다. “한국에 돌아가 우리나라의 요리 특징을 살리돼 새로운 컨셉의 요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때다. “미국은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하는 반면, 유럽은 로컬푸드를 활용해 독창적인 요리로 인정받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서울·뉴욕서 자신만의 한식 요리 선보여

한국에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했다. 2009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식당’을 열고 자신만의 한식 코스 요리를 선보였다. 때마침 조성된 ‘한식의 세계화’ 분위기와 맞물려 그의 요리는 단번에 주목 받았다.

먹기 아까울 만큼 그림 같은 요리,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플레이팅은 미식가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는 ‘스타 셰프’라는 평가에 안주하지 않았다. “예전에 만든 요리를 보면 창피하고 부끄러워요. 지난해 한 요리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지금 메뉴들도 완성작이라 말할 수 없어요. 계속 발전해야죠.” 새로운 메뉴 개발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에는 뉴욕으로 시선을 돌렸다. 뉴욕의 중심에 ‘정식’(JUNGSIK)이라는 한식 레스토랑을 열었다. “누구나 뉴욕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는 꿈을 꿔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뉴욕타임즈에 실릴 만큼 현지에서 주목 받았다. 올 가을에는 뉴요커들이 즐겨 보는 자갓(ZAGAT)과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될 예정이다. “자갓과 미슐랭 가이드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가 뉴욕에서 레스토랑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저도 궁금해요.”

글=송정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정식당]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뉴 코리안’ 컨셉의 레스토랑으로 도산공원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뉴 코리안’이라는 컨셉이 말해주듯 한국의 식재료를 사용하지만 정통 한식과는 다르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창작 메뉴들로 구성된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정식샐러드’ ‘지금 합천은 … 장독’처럼 요리 이름에서 셰프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점심은 4만원부터, 저녁은 10만원부터다. 내년에는 자리를 옮겨 지금 선보이는 코스 요리 외에 단품 요리를 선보일 계획이다.

주소 강남구 신사동 649-7
문의 02-517-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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