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스틸러 ⑥ 윤제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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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문은 두 얼굴을 가졌다. 광기·망상의 악당(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7급 공무원(영화 ‘나는 공무원이다’)으로 변신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와 영화 ‘그림자 살인’에선 상반된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했다. [신인섭 기자]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구자홍 감독, 다음 달 12일 개봉)를 보고 나면 “윤제문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라고 할 법하다. 영화는 안정된 생활이 지상목표인 10년차 7급 공무원 한대희(윤제문)가 우연한 기회에 인디밴드 멤버가 되는 일탈을 겪으며 자아를 찾아간다는 스토리다.

 이 단순한 영화를 코믹하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끌고 가는 일등공신은 윤제문이다. 광기에 눈알을 희번덕거리거나(드라마 ‘더킹 투하츠’),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얼어붙게 하는(영화 ‘비열한 거리’) 윤제문의 모습은 잊어도 좋다. 나지막한 목소리와 미세한 표정변화만으로 소시민의 무기력함과 일탈의 간절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당신은 정말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윤제문의 첫 주연작이니, 연기변신이니 요란하지만,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재미있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두 번째 주연작 아닌가.

 “‘이웃집 남자’(2009)가 첫 주연작이지만, 흥행하지 못해 알려지지 않았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해보고 싶은 캐릭터라면 하는 거다.”

 -주인공 대희가 일탈했다가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 설정이 진부하지 않나.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일탈을 꿈꾼다. 대부분 일탈의 대가를 치르며 현실로 돌아오지만, 일탈의 경험은 평생 가슴에 묻고 산다. ”

 -대희처럼 음악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지 않나.

 “고교 때 클래식 기타를 쳤고, 졸업 후에는 대금도 배웠다. 대금소리에 빠져 국악학원에 갔는데 이생강 선생님이 하는 곳이더라. 음악이 밥벌이 수단은 아닌 것 같아 그만뒀다. 하지만 여전히 음악을 사랑한다.”

 -영화처럼 일탈을 꿈꾼 적이 있나.

 “연기 자체가 일탈이지 않나. 늘 안 가본 길을 가는 거고, 다른 사람이 되니까. 일상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이번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은.

 “대희가 음악에 맞춰 혼자 춤추는 엔딩신은 오버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악당 김봉구 역도 줄곧 비현실적 캐릭터로 몰고 갔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다.”

 -‘우아한 세계’(2007) 이후 조폭 연기를 안 하고 있는데.

 “‘비열한 거리’ ‘열혈남아’ ‘우아한 세계’가 잇따라 개봉하면서 조폭 이미지가 강해졌다. 조폭 전문이라는 말마저 듣고서 관련 캐릭터를 고사했는데, 지금은 시나리오만 좋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전설의 주먹’(강우석 감독)에선 한 물 간 건달로 나온다. 조폭 연기로의 복귀라 할까.”

 -상반된 캐릭터를 잇따라 연기했는데.

 “재미있으니까 어렵지 않다. 현장을 믿고 나를 믿는다. 아무리 머릿속에 구상을 해도 현장에 가면 달라진다. 감독·배우들과의 교감에서 새로운 게 나온다. 도살장 세트에 가서 소품을 만져보고 공기를 느껴야 백정 가리온(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이 되는 거다. 연기는 라이브다. 즉흥적인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괴물’ ‘마더’에 출연, 봉준호 감독이 아끼는 배우로 알려졌다.

 “연극할 때부터 나를 잘 봤던 거 같다. ‘살인의 추억’ 때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배역이 없어 못했다고 하더라. 봉 감독이 임필성 감독에게 나를 추천해 ‘남극일기’(2005)에 출연했는데, 그 이후로 배역이 많이 들어왔다. ”

정현목 기자

◆신 스틸러(Scene Stealer)=영화·드라마에서 독특한 개성으로 주연 이상으로 주목받은 조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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