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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든 공무원, 시름까지 잘라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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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무원 박광호(소방관·왼쪽)· 김종후(경찰관)씨는 쉬는 날이면 이발봉사를 다니는 ‘사랑의 가위손’이다. 이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한사랑봉사단의 봉사활동 사진이 벽면에 가득하다. [장대석 기자]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으로 다들 생각하지요.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만 하는 줄 알잖아요. 하지만 이웃을 보살피는 데 돈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남는 사람은 시간을 나누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나누면 되는 것이죠.”

 현직 공무원인 박광호(55) 소방위와 김종후(50) 경위는 “자원봉사도 생각과 뜻만 있다면 할 일은 넘칠 정도로 많다”고 말했다. 한사랑봉사단 회원인 박씨와 김씨는 주변에서 ‘사랑의 가위손’으로 불린다. 전북 전주시·완주군의 요양원·양로원이나 장애인복지관 등을 찾아가 이발 봉사를 한다. 한 달에 15~20일은 가위·빗을 잡고 나이 많은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의 머리를 깎고 다듬는다.

 무주·진안·장수군을 관할하는 무진장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박씨는 4년 전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하루 근무 후 하루를 쉬는 그는 때로는 24시간 근무를 마친 뒤 집에 들어갈 새도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곧바로 봉사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화재 등 재난 현장에 나가 희생자나 유족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어요. 농촌을 순찰할 때마다 노인들이 머리를 제대로 깎지 못해 덥수룩한 모습도 많이 봤지요. 이발 기술을 배우면 많은 사람 을 도울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 그는 제대로 기술을 배우기 위해 2009년부터 2년간 전주비전대 미용예술학과를 다니며 이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주 덕진경찰서 역전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김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파킨슨병을 앓아 요양원에 입원 중인 장인을 문병간 것이 계기가 됐다. 자원봉사자들이 와 장인을 비롯한 입원환자들을 이발해 주는 것을 보고는 ‘봉사활동은 남에게 기쁨을 주지만, 자신도 행복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군복무 시절 이발병으로 부대원들의 머리를 깎아주던 경력이 있어 가위질은 금방 숙달됐다.

 김씨는 “처음엔 ‘얼마나 오래하는지 두고 보자’ ‘며칠 못 가서 포기할 것’이라고 말하던 가족들이 이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봉사활동 다니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3교대로 근무하는 김씨는 근무가 없는 날은 물론, 밤 근무를 앞두고 쉬는 낮 시간에도 봉사활동을 나간다.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박씨와 김씨는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면 짝사랑으로 그치고 말듯이, 마음 속에 담아둔 봉사정신도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한사랑봉사단= 현재 등록 회원이 350여 명으로 17년 전에 결성됐다. 미용업 종사자가 90%를 차지하고, 가정주부·대학생·직장인들도 있다. 월~토요일 거의 매일 10~20여 명의 회원들이 노인·장애인 등의 머리를 손 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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