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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여야, 소비세 인상 합의 노다 통큰 승부수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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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 여야가 15년 만에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에 전격 합의했다.

 집권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자민·공명당은 지난 15일 “현행 5%인 소비세율을 2014년 4월에 8%, 2015년 10월에 10%로 올리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1989년 4월 상품가격에 3%가 가산되는 소비세를 도입했으며 97년 4월 자민당 하시모토(橋本) 정권 당시 5%로 인상했다.

 민주당 내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 등이 소비세 인상 표결에 반대할 뜻을 밝히고 있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하지만 제1, 2야당과의 합의에 따라 소비세 인상법안은 조만간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쟁을 거듭하는 일본의 여야가 15년 만에 정치권에서 ‘죽음의 길’로 불리는 소비세 인상에 합의한 것은 “재정 악화를 더 이상 방치하다간 유럽 재정위기의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97년 4월의 소비세 인상 이후 15년 사이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0% 줄었다. 반면 국가 채무는 두 배로 부풀어 올랐다. 액수로는 1000조 엔. 부채가 GDP의 두 배가 넘어 버렸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산에 따르면 올해 말이 되면 2.4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유럽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1.9배)나 이탈리아(1.2배)·스페인(0.7배)을 훨씬 웃돈다.

 반면 고령화로 인해 복지 관련 비용은 매년 1조 엔 규모로 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 때문에 세수는 늘지 않고 있다. 예산의 절반을 빚으로 메우고 있는 비상상황이다. 메이지(明治)대 가토 히사가즈(加藤久和) 교수는 “올해 65세 일본 고령자의 경우 태어날 때 15만 엔(약 225만원)의 빚을 떠안고 태어났지만 현재 두 살 어린이의 경우 723만 엔(약 1억800만원)의 빚을 떠안고 태어난 셈”이라며 “여야가 더 이상 싸울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제까지 일본의 경우 “국채의 95%가 일본 내 금융자산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 안전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최근 들어 외국인 보유액이 커지고 있는 데다 재정 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실망이 퍼지면 일본 국채는 당장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국채 매물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와 장기 금리가 폭등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이오(慶應)대 다케모리 슌페이(竹森俊平) 교수는 “일본은 증세를 통해 재정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디폴트(채무 불이행)하느냐는 선택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제 1야당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총재는 당초 “소비세 인상안을 받아들일 테니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집권 당시의 매니페스토(정권 공약)가 잘못됐었다’고 시인하고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노다 총리의 수차례에 걸친 전화 설득에 화끈하게 양보했다. 합의 다음 날인 16일 가두연설에 나선 다니가키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자민당(정권) 시대에 많은 빚을 남기고 말았다. 빚을 (떠넘기고) 다음 세대에 부탁하는 것만으로는 자민당 시절 재무상을 지낸(2003년 9월~2006년 9월) 인간으로서 성불(成佛)하지 못할 것(한이 맺힐 것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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