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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토코토리’로 똘똘 뭉친 편집의 나라, 일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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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25면

일러스트=최종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누구나 그렇듯 난 일본인들의 친절에 엄청 감동했다. 지구상에 일본처럼 친절한 나라는 없다. 물론 내 비교대상은 내가 직접 경험한 독일과 한국이다. 그 뻣뻣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독일 사람이나, 타인에게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한국 사람과 비교해 보면 일본 사람들은 거의 천사(?) 수준이다. 그러자 내 일어 강독을 지도하는 김기민 선생은 차분하게 그런다. “조금 지나 보세요. 짜증나실 거예요. 아주 많이….”

[김정운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21>일본의 정체성

요즘 나는 아주 엉뚱한 데서 짜증이 난다. 일어책을 읽을 때다. 나름대로 일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 회화는 그리 큰 발전이 없다. 사실 일본말을 그리 잘하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러나 일본책은 제대로 읽고 싶다. 워낙 좋은 책이 많다. 일본은 번역의 나라다. 미국·유럽의 좋은 책은 죄다 번역되어 있다. 이제 인문사회과학 쪽 일어책은 느리지만 거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 교토의 큰 책방 구석에서 자주 혼자 논다. 너무 행복하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일어 문장의 끝부분을 대충 얼버무려 읽는 습관이 생겼다. 일어 문장의 끝은 의미상 무시해도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읽은 문장 중에서 그런 종류의 것들을 몇 개 모아 번역해 보자. ‘それについても考えてみたいと思います。’(그것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로는 ‘그것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생각을 두 번이나 꽈서 해야 하고, 거기에 ‘보고 싶다는’ 희망까지 곁들여 표현한다. 하나 더. ‘書か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です。’(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뜻은 아주 단순한 문장이다. ‘써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안 된다’고 두 번이나 말한다. 그것도 부족해서 ‘~안 된다고 한다’는, 자기 뜻이 아니라 남의 뜻이라는 뉘앙스까지 덧붙인다. 가만히 읽고 있자면 아주 환장한다.

마지막으로 진짜 숨이 콱콱 막히는 문장 하나 더. ‘太ってないことはないんじゃない?(살찌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젠장, 세 번 부정하는 문장이다. 도대체 살쪘다는 이야기인가, 안 쪘다는 이야기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분명하지 않다. 이쯤 되는데도 짜증을 안 낸다면 아주 참을성이 많은 인간이다. 일본 사람들은 무지하게 잘 참는다.

일본인들은 자기 생각도 마치 남의 생각처럼 이야기한다. 일본어처럼 간접화법이 발달한 문법도 없다. 물론 독일어도 간접화법이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접속법(Konjunktive)-1형식’이라는 문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어의 간접화법에서는 도대체 ‘화자(話者)’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의 주체가 항상 분명해야 하는 독일어와 달리, 일본어에서 말하는 주체는 여기저기에 꼭꼭 숨겨져 있다. 자기 이야기도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말한다. 일본에서 주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일본은 ‘번역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대립·갈등 없이 공존
겸양어, 완곡한 표현, 간접화법, 수동태 등이 아주 섬세하게 발달한 일본어는 일본의 근대역사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일본 문화를 ‘저수지 문화’로 비유한다. 모든 문화가 저수지의 물처럼 밀려와 고인다는 이야기다. 섞이지도 않는다. 들어와서 그저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그래서 가라타니는 ‘일본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라고 기막힌 문장으로 일본 문화를 정리한다. 그러나 이 폼 나 보이는 문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매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받아들인다는 뜻인가, 안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인가.

사용하는 문자도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 세 종류다. 세 문자의 구성원리는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들어온 의미체계는 한자로, 서구에서 들어온 의미체계는 가타카나로,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형성된 자신들의 의미체계는 히라가나로 각 맥락에 맞게 표기할 뿐이다. 그러나 그 원칙도 때에 따라 달라진다. 문자가 그렇다 보니 문법도 당연히 간접화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느 맥락에서 온 것인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글로벌하게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면,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는 일본 내수용 대표 지식인이다. 지독하게 책을 파는 사람이다. 사실 내 ‘에디톨로지’는 ‘편집공학’이라는 그의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그의 편집공학과 내 에디톨로지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수년 전 ‘편집’이라는 그의 개념을 듣는 순간, 내가 그때까지 고민하던 창의성에 관한 문화심리학적 문제가 한순간에 풀리는 듯한 통쾌함을 느꼈다.

마쓰오카 세이고는 일본을 아예 ‘편집국가’로 정의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하는 일본에는 세계의 모든 종교가 공존한다. 그뿐만 아니다. 세계의 좋은 것은 죄다 모아다 놓는다. 에펠탑을 흉내 낸 엉성한 도쿄타워가 에펠탑보다 더 높다고 자랑한다.(요즘은 ‘스카이츠리’라는 탑으로 또 요란하다.) 도쿄만의 오다이바에 가면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축소해 만들어 놓고 좋아라 한다. 한국에서라면 도무지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을 일들이 일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그게 일본이라는 거다.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는 일본식 문화편집 방식이야말로 ‘일본의 정체성’이라고 마쓰오카 세이고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아예 ‘방법으로서의 일본’을 주장한다. 일본 문화에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는 거다. 따라서 일본 정체성에는 내용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서로 다른 것들이 대립과 갈등 없이 공존할 수 있는 바로 그 편집방법 자체가 일본의 정체성이라고 마쓰오카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일본은 ‘방법의 나라’라는 거다.

일본식 방법론의 핵심은 번역에 있다.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앞서 서구의 근대를 번역했다. 누차 반복하지만 세상은 개념을 통해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일본은 근대 서구 개념들을 번역함으로써 수백 년간 동양을 지배해온 의식을 해체하고 새롭게 편집해 냈다. 오늘날 한자문화권에서 사용되는 핵심 개념들은 일본 메이지시대 번역으로부터 그리 크게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의 근대의식 형성과정에 관해 뛰어난 저작을 남긴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일본이 가장 앞서 서구를 받아들였던 이유는 당시 일본의 지배계급이 무사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 역시 하급 사무라이 출신이었다.) 유교의 영향 아래 문치관료들이 쇄국을 고집했던 조선이나 중국은 서구 물질문명의 월등함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아편전쟁에서 진 중국이 영국 사절에게 끝까지 요구한 것은 삼궤구배(三<8DEA>九拜)였다. 전쟁에 진 나라의 황제가 항복하면서도 이긴 나라의 사절에게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절하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다. 맛이 가도 제대로 간 거다. 그러나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사무라이의 자존심은 한 합을 겨루기 전까지다. 일단 지면, 강자 앞에 바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이런 단순 무식한 무사문화의 전통이 있었기에 일본이 가장 앞서 서구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거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우선 서구의 군대조직을 흉내 냈다. 그게 가장 쉬웠기 때문이다. 군대로 매개된 일본식 근대화는 몸으로 구체화될 수 있었다. 푸코식으로 설명하자면, 서구 제국주의의 무기, 군대의 의복과 행진곡 등을 통해 ‘신체의 근대화’를 구현했다는 이야기다.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학교에서의 아침조회가 일본식 근대화의 전형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조회의 줄서기, 정렬하기, 행진, ‘신세계 체조’와 같은 군대식 리추얼로 일본은 자국 국민은 물론 식민지의 모든 이들을 일본식 근대인으로 재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한편으로는 군대와 학교의 다양한 리추얼을 통해 몸으로 ‘외화(Veraeusserung)’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개념의 적극적 번역을 통해 ‘내면화(Verinnerlichung)’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고체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근대 일본식 번역으로는 개인, 사회, 문화 등을 들 수 있다.

사회·개인·문화 100년 전엔 없던 개념
서구의 근대 개념인 ‘culture’, ‘society’, ‘individual’에 조응하는 개념이 동양에는 없었다. 이들 개념의 번역인 ‘문화’, ‘사회’, ‘개인’과 같은 것들은 일본 메이지시대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단어다. 이 개념들이 오늘날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된 것은 불과 최근 몇십 년의 일이란 뜻이다. 잘 생각해보면 엄청난 이야기다.

일단 ‘문화’ 개념부터 보자. ‘文化’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文明開化論)’의 축약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구화와 문명화를 동일시했다. 문명의 발달을 일원론적으로 해석한 서구문명 개념을 단순 수입한 것이다. 문화 개념이 후쿠자와식 ‘문명개화론’에서 벗어나 다차원적 ‘문화’ 개념으로 변한 것은 냉전시대가 끝난 후의 일이었다. ‘문화’는 그나마 쉬운 개념이었다. 그 구체적 의미는 달라도 ‘文明’과 ‘文化’의 한자어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社會’와 ‘個人’은 달랐다.

일본 번역의 역사에 관해 치밀한 분석을 하고 있는 야나부 아키라(柳父章)의 책 번역어의 성립을 보면 애초에 동양에는 ‘사회’나 ‘개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아예 그런 의식조차 없었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메이지 초기 지식인들은 ‘society’를 처음에는 ‘人間交際’, ‘社’, ‘會’ 등으로 번역했다. 중국에서 사용한 결사조직의 이름인 ‘白蓮會’, ‘白蓮社’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社’와 ‘會’가 서로 달라붙어 ‘社會’가 되었다. ‘individual’의 번역은 더 큰 문제가 된다. 주체성립의 서구 근대사가 이 한 단어에 다 수렴되어 있기 때문이다.(이에 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한번 생각해보라.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개인’과 ‘사회’라는 단어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상상이 되는가? 당시 사람들은 그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아주 많이 황당해진다.

몇십 년 후,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개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아이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개념들로 이야기하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전혀 다른 가치의 세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우리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 어떠한 예측도 불가능하면서, 불과 몇 년간의 성적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려 달려드는 이 미친 교육시스템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이번에는 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으로 채워지는 ‘개인’ 개념의 구성사에 관해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개인’의 번역문제로 들어서서 내친김에 그냥 여기까지 와 버렸다. 매번 이런 식이다. 그러나 난 내 글의 독자가 내 ‘인식의 편집과정’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사방으로 날아가는 생각의 조각들을 잡아내 재구성하는 지식편집은 아주 큰 즐거움이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의 저서와 방송 활동, 특강을 통해 재미와 창조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cwkim@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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