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회사채 신속인수는 `대마불사' 관념 다시 심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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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 조치는 신용경색 해소 등의 효과는 있었으나 `대마불사'의 관념을 다시 심어주는 계기가 돼 기업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평가했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S&P는 최근 한국의 기업 및 은행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보고서에서 '산업은행의 회사채 만기연장 조치는 신용경색을 해소하고 파산위험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으나 부작용도 나타났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 조치는 채권발행기업의 신인도를 일시적으로 안정시킨데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차입경영을 계속하고 은행이 대출을 잘못하더라도 정부가 구제해 줄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조치의 주된 수혜자가 재벌이 됨에 따라 재벌의 구조조정도 지연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보고서는 '지난 99년 정부와 채권단이 대우의 해체를 허용했을 때만 해도 재벌도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말 정부가 현대그룹 일부 계열사를 구제한 이후에는 `덩치가 너무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의 부채문제는 올해에도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 상승을 막는 주요인이 될 것이라면서 일부 재벌은 아직도 3년전 금융위기의 교훈을 간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은 여전히 미흡하고 기업이사회도 소수의 주주들로 구성돼 있다'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익성이나 자기자본이익률보다는 매출증대나 수출확대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벌2세들의 경영진 취임 움직임은 기업을 설립자 가족들의 협소한 이해관계에서 분리시켜 일반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하는 흐름에 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어 은행 구조조정과 관련,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대외신인도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면서 막대한 부실여신과 취약한 자본금, 위험관리 능력 등이 은행자산의 질적 개선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실은행과 우량은행을 합병하는 경우 경영진으로 하여금 영업망 강화와 부실자산 해결이라는 핵심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재벌개혁 지연으로 금융기관 지원이 불충분해져 더 많은 공적자금이 필요하게 됐다고 덧붙였다.(서울=연합뉴스) 주종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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