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위대, 42년 만에 도쿄 시내 무장행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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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군청색 위장 크림을 바른 일본 육상자위대 특수부대인 ‘레인저’ 부대원 17명이 12일 소총을 멘 채 도쿄 이타바시구의 시가지를 행군하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12일 오전 9시 일본 도쿄 이타바시(板橋)구의 아라카와(荒川) 하천 옆길.

 짙은 녹색의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얼굴에 군청색 위장크림을 바른 육상자위대원 17명이 일렬로 나란히 일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완전군장 차림에 어깨에는 소총을 멘 무장 군인들의 모습에 시민들은 깜짝 놀라거나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육상자위대 특수부대인 ‘레인저’ 훈련생. 11주 동안의 훈련 마지막 날 행사가 도쿄 시내 6.8㎞를 3시간에 걸쳐 행군하는 것이었다.

 훈련 이라고는 해도 자위대원들이 도쿄 시내에서 무장행군을 한 것은 1970년 이후 42년 만이다. 길가에는 일장기를 흔들며 “자위대 간바레(파이팅)”라고 외치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3·11 동일본대지진) 재해지역 지원 고맙습니다. 하지만 시가지 군사훈련은 그만두세요”라는 현수막을 들고 훈련 반대 구호를 외치는 시민도 상당수였다.

 레인저 부대의 도쿄 도심 무장행진의 대외 명분은 대형 재해에 대비해 시가지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육상자위대 측은 “레인저는 극한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이번 행군훈련도 그 일환이며 흙보다 지치기 쉬운 아스팔트 위를 장시간 걷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방위상도 이날 “이 같은 훈련은 지금까지 수시로 해왔던 것으로 특이한 것이 아니다”라 고 말했다.

그러나 도쿄(東京)신문은 “비록 실탄이 장전돼 있지는 않았지만 총을 메고 도쿄 도심을 레인저 부대원들이 행군한 데 대해 자위대 안에서조차 ‘재해 현장에 총이 왜 필요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무장행군한 자위대원들은 이날 아침 도쿄에서 110㎞가량 떨어진 시즈오카(靜岡)현 히가시후지(東富士) 연습장에서 일부러 헬기를 타고 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자위대에 대한 일본 국민의 호감도가 높아진 틈을 타 자위대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민 하사마 후지오(挾間富士夫·88)는 “시대는 변했다고 하지만 5·15사건(1932년 반란을 일으킨 해군 청년 장교들에 의해 당시 총리 이누카이 쓰요시가 피살됨)이나 2·26사건(36년 청년 장교들이 1400명의 사병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킴) 때도 무장한 병사들이 도쿄를 활개 쳤던 기억이 난다”며 “일본 평화헌법의 힘을 믿지만 ‘천 길이나 되는 긴 둑도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진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앞서 육상자위대 제9사단은 지난 3일 아오모리(靑森) 시내 중심가에서 69년 이후 43년 만에 장갑차 등을 동원한 군사행진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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