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 회사 롯데보다 더 유명한 기업 만들겠다”

중앙일보

입력

국내 PDA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제이텔 신동훈 사장(38)을 만나기 전 그에 대한 선입견이 한 가지 있었다. 그가 바로 롯데그룹 직계가족이라는 점 때문. 그의 큰아버지는 롯데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이며 아버지는 前 롯데제과 신철호 사장이다. 그런 그가 벤처기업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직 새벽 2∼3시까지 꼼짝도 않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롯데 계열사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게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뭔가 다른 계획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신사장. 카메라 앞에서 자꾸 머리를 매만졌다. 인터뷰가 있던 전날도 새벽까지 일을 한 후 잠깐 눈을 붙이고 나오느라 군데군데 눌린 머리를 제대로 손질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쑥스러워 했다.

하지만 렌즈를 바라보는 눈빛은 진지했다. 순간 순간에 아주 충실했다. 재벌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에 무언으로 항의하는 듯했다. 그는 열정적인 벤처기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스스로 개척해 왔어요. 미국 유학 가서도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 힘으로 공부를 했으니까요. 그리고 귀국해서는 롯데가 아닌 삼성에 입사를 했죠. 저는 컴퓨터 엔지니어를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에 롯데 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세포처럼 작은 것이 승리한다”

신동훈 사장은 지난 97년 11월 제이텔을 설립했다.

“직원 7명에 3억원으로 이곳 분당에서 시작했죠. 그리고 1년 후인 98년 12월 첫 제품이 나왔습니다. 세포(Cell)처럼 작은 것이 승리(Victory)할 것이란 확신을 담아 셀빅(Cellvic)이라 이름 지었죠. 이 초기모델이 지금까지 계속 버전-업 됐습니다. 무게 85g의 초소형 제품 ‘셀빅i’가 최신형이죠.”

셀빅 시리즈는 무선인터넷을 염두에 두고 설계돼 다양한 무선인터넷용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 다국어를 지원하기 때문에 수출도 용이할 것으로 신사장은 내다보고 있다.

“현재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중국어를 지원하는 제품이 이미 출시됐습니다. 또 일본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심지어 히브리어를 지원하는 제품도 개발중이죠. 올 상반기에는 개발이 완료될 것입니다.”

신사장은 해외진출을 올해의 지상과제로 삼았다. 국내에서는 PDA 시장점유율 60∼70%를 점유하는 독보적인 존재이지만 아직 해외에서는 국내만큼 그리 유명세를 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시장이라는 게 지난 해 말 기준 연 10만 대 정도로 극히 미미해 연간 3백만 대 수준의 중국 등 세계시장 진출은 필수적인 과제가 된 셈.

“셀빅은 ‘셀빅OS’란 자체 운영체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팜社의 팜OS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CE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 PDA 운영체계 시장에 정식 도전장을 낸 셈입니다. 하지만 분명 승산이 있습니다. 이미 팜과 MS가 선점하고 있는 미국 같은 거대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중국 등은 가능성이 있어요. 팜사의 점유율이 극히 미미하거든요. 윈도CE도 완전 실패했구요. 따라서 중국을 시작으로 일본, 동남아 등으로 시장을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제이텔은 벌써 중국의 모토로라와 무선 호출기능이 내장된 제품에 운영체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지난 1월부터 로열티를 받고 있으며 스웨덴의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도 셀빅을 납품, 이동전화와 연결해 인터넷 서비스를 하도록 하고 있다.

신사장은 PDA 시장을 키우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일환으로 지난 해 11월부터 TV 광고를 시작했다.

“중국의 경우 대규모 마케팅과 광고를 통해 PDA의 인지도가 아주 높습니다. 유통망이 소비자와 아주 가까이 있죠. 백화점에 PDA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PDA 분야의 선두기업인 저희 제이텔이 그 동안 제대로 마케팅 활동을 하지 못해 아직 PDA가 무엇을 하는 기기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PDA의 개념을 널리 확산시키기 위한 시도 중 하나로 광고를 시작한 것이죠.”

그는 또 공략 대상층도 아주 세분화 해 그들을 대상으로 특화된 마케팅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종전까지 20∼30대의 성인 남자에 한정지어 공략, 시장을 오히려 한정시켰다는 판단에 따른 것. 보험설계사용 제품, 다이어트용 프로그램이 내장된 제품 등 특수용도를 위한 제품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제품에 대해 가장 호기심이 많고 구매력이 강력한 10대를 겨냥한 제품도 선보일 계획이다. 올 상반기에는 PDA와 휴대폰을 결합한 제품도 출시할 방침.

첫 직장인 삼성에서 쌓은 기술적 토대

신사장은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PDA 관련 기술수준은 선진국 어느 연구인력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주 높습니다. 경험이 풍부한데다 탄탄한 기술적 노하우를 갖고 있어 세계 시장에서 유명 PDA 업체와 겨뤄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강한 자신감은 삼성전자 근무시절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컴퓨터공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한 그는 바로 삼성전자에 입사한다. 거기에 근무하면서 PDA를 처음 접한 것.

“93년 애플에서 뉴튼이란 제품을 출시한 것을 보고 삼성전자에서 PDA 개발을 전담하는 팀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팀장을 맡았죠. 프로토타입 제품은 삼성이 팜社보다 먼저 개발했어요. 그러나 회사 내부적으로 너무 이르다는 판단 아래 제품을 출시하지는 않았죠.”

신사장은 이 팀을 이끌면서 엄청나게 고생했다. 새벽 3∼4시에 퇴근한 후 잠시 눈붙이고 아침 7시 정도에 출근하는 일이 2년 정도 계속됐다.

그러는 동안 팀원들의 기술적인 기반은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오죽했으면 밤 12시에 퇴근하는 것을 ‘조퇴한다’고 표현했을까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던 중 문득 너무 R&D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터넷과 관련된 분야의 경험을 쌓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아마 막연히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창업 후 그는 힘들다고 느낄 여유도 없이 일에 매달려 지금의 제이텔을 만들었다. 이제 그는 제이텔을 모바일 컴퓨팅 분야 최고의 솔루션 업체로 키우는 비전을 갖고 있다. 그렇게 되리라 그는 확신한다.

신사장은 알게 모르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사실 아버지도 은근히 사업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다정다감하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분은 아니었죠. 가족들에게 관심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서울대에 입학할 만큼의 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요. 합격하고 나니까 ‘법대 가지 그랬니?’ 정도의 말로 저를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회고한다.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굉장한 권위를 갖고 있었다는 것. 그런 아버지로부터 신사장은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일하는 끈기와 집념을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밖에 몰랐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다소간 소홀이 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에게 서운한 감정도 갖고 있었던 게 사실.

이제 그는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과 될 수 있으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하는 것도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처음에는 성취감이 좋아 일에 매달렸지만 이제는 책임감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는 그. 올해는 든든한 기술적 기반 위에서 안정적인 성장이 이룩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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