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루살렘의 운명, 런던·로마·메카가 결정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예루살렘 전기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시공사
964쪽, 3만8000원

“우리 세계의 모든 길, 모든 갈등이 이어진다”(요르단 왕 압둘라 2세)는 ‘예루살렘’을 무대로 한 세계사다.

 도시의 전기라는 표현이 낯설기는 하지만 예루살렘은 충분히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 1000년간 유대교 지역,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 1300년간은 이슬람 지역이었던 결과로 동서양 문화 교류의 장이자, 종교 갈등의 접점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책은 기원전 70년 로마군과 유대인 반군간의 예루살렘 공방전에 대한 드라마틱한 묘사로 시작한다. 이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1050년 다윗의 등장에서 페르시아 제국, 로마제국 시대의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의 맘루크 왕조, 오토만 제국 치하의 예루살렘이 겪은 수난을 치우침 없이 세밀하게 서술한다.

 그 덕에 뜻밖의 사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 역시 예루살렘에 욕심을 냈다는 것.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은 “직접 들어가 예수가 죽은 바로 그 자리에 자유의 나무를 심겠다”라며 예루살렘 공략에 나섰다. 1799년 3월 예루살렘에서 약 40㎞ 떨어진 곳까지 진격했으나 아프간인·알바니아인·무어인으로 구성된 오토만 군대의 저항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러시아도 등장한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3세는 “팔레스타인에서 정교를 강화하기 위해” 자기 형제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왕립 정교회 팔레스타인협회장으로 임명했으며, 세르게이는 1888년 올리브산 위에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를 축성했다.

 이스라엘 건국의 토대가 된 시온주의 운동의 주창자인 오스트리아의 테오도어 헤르츨 등 유대인이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유럽 열강의 유력자와 교섭하는 과정도 숨가쁘게 펼쳐진다. 구체적 결실로 1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목말랐던 영국은 1917년 유대인의 협력을 얻기 위해 밸푸어 선언문을 발표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자치지역을 건설하는 것을 환영”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훗날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 된 하임 바이츠만이 폭탄제조 원료인 아세톤을 대량으로 만들어 준 것도 한몫 했다. 하지만 샤리프와 프랑스에게도 팔레스타인을 주겠다고 동시에 약속해 오늘날 중동 분쟁의 씨앗을 뿌린 결과가 됐다.

 ‘6일 전쟁’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의 지은이는 시온주의 운동의 주역 중 한 명의 후손이지만 때로는 ‘역사가의 눈’이 아쉬울 정도로 냉철하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운명은 바빌론, 로마, 메카, 이스탄불, 런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먼 곳에서 결정됐다는 지은이의 지적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 결과 오늘날 예루살렘은 하나의 신이 사는 집이면서 두 민족의 수도이기도 하고, 세 종교의 사원이 공존하는 공간이 됐다. “도시라기보다 하나의 불꽃이며 어느 누구도 그 불꽃을 가를 수 없기에”(시몬 페레즈 이스라엘 대통령) 그 앞날이 불투명한 화약고의 역사를 알기 위한 필독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