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전략]도산한 닷컴기업 매입적기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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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는 최근 패션몰닷컴 (Fashionmall.com) 덕에 무덤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패션몰은 도메인명, 상표, 사이버 캐릭터 ‘미스 부’, 첨단 맞춤 글꼴 등 부의 자산을 40만 달러 이상에 사들였다.

고객 데이터베이스가 최고 자산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법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여름 곤경에 빠진 토이스마트닷컴 (Toysmart.com)이 25만 명의 고객명단을 경매에 붙이자 美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명단과 함께 사이트 전체를 매각해야 한다는 것.

그뒤 39개 주(州) 검찰총장들은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고객명단 매각을 금지해 줄 것을 연방법원에 요청했고 고객명단의 운명은 아직 판가름나지 않은 상태다.

기프트엠포리아는 결국 투자액 300만 달러 가운데 일부를 건질 수 있었다. 낸시 황과 오닐은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 않았다. 황은 “파산의 경우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더러 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법률에 따르면 파산기업은 청산과 관련된 법률비용과 자문료를 먼저 지불하고 세무당국 등 ‘1순위 채권자들’에게 채무를 변제해야 한다. 그 다음이 직원들 차례다. 그러고도 남는 자산이 있다면 주문한 상품을 받지 못한 고객에게 환불해 줘야 한다.

인터넷에서 사망시간은 생존시간만큼이나 찰나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청산인들에 따르면 자산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신속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닷컴기업만이 최고의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아직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를 매각해야 한다. 영업을 축소하고 핵심 직원들을 잃고 사이트마저 폐쇄하는 순간 기업가치는 곤두박질친다. 유이커&어소시에이츠의 변호사 수전 유이커는 “원리는 간단하다. 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사이트 접속자 수가 줄고 회사 가치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유이커는 지금까지 두 닷컴기업의 자산매각을 감독한 바 있다.

신속히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도산한 닷컴기업의 자산을 매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가 다름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압류자산’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경매업체들은 닷컴기업들의 파산 증가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비드4애세츠닷컴(Bid4Assets.com)은 무선 메시지 전송 프로그램 생산업체 시빅존닷컴(Civiczone.com)이 도산하자 컴퓨터와 장비들을 경매 처분한 바 있다. 비드4애세츠의 CEO 탐 콘은 “비드4애세츠야말로 도산한 닷컴기업의 자산을 매각해 주는 최초의 닷컴기업”이라고 자랑했다. 매각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시빅존의 투자자와 경영진이 콘과 접촉한 지 4주도 안 돼 경매가 진행된 것이다. 비드4애세츠는 매각자산이 1000만 달러를 넘는 경우 0.25%, 2만5000달러 미만일 경우 8%를 수수료로 챙긴다
침몰한 닷컴기업의 자산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 도메인명일 수도 있다.

도메인명은 온라인 경매에 가장 적합한 자산이다. 한 닷컴벌처가 플래닛록닷컴 (Planetrock.com)을 경매에 부쳤을 당시 콘은 이미 도메인명 경매부문에서 타사에 한발 앞서 있었다.

비드4애세츠는 호주와 영국에서 플래닛록 도메인명을 구매할 용의가 있는 바이어 물색에 나섰다. 그들 바이어 사이에 입찰경쟁이 벌어져 플래닛록 도메인명 가격은 500달러에서 2만8000달러로 치솟았다. 콘도 “놀랄 정도”였다고 말했다. 비드4애세츠가 챙긴 수수료는 1960달러였다.

대다수 도메인명의 가치는 그보다 훨씬 떨어진다. 시빅존이 보유 중이던 각기 다른 도메인명 108개는 모두 합해 1025달러에 팔렸다. 도메인명 등록비용도 못 건진 셈이다. 기업공개로 한몫 잡아보려던 젊은 기업인들에게 닷컴의 꿈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일은 거스를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황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회사 문을 닫는다는 것은 문을 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문을 닫을 때도 열 때와 마찬가지로 은행과 전화국에 연락해야 한다. 그러나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활력이나 벅찬 감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실패한 닷컴기업인이 그나마 얻는 게 있다면 몇 가지 교훈뿐이다. 시빅존의 설립자 앤드리아 매클랠런은 회사 임대차 계약과 신용카드 발급에 개인적으로 보증을 섰다가 결국 5만 달러 이상을 물어줘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앞으로 벤처기업을 다시 설립한다 해도 보증 설 때 좀더 신중히 행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매클랠런은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경우 신속히 발을 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회사의 자산가치를 보존하고 장시간 점차 무너져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고통을 누그러뜨리기 위함이다. 매클랠런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어려운 시련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이다.

그녀에게는 요즘 닷컴기업의 실패사례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그녀는 “인터넷 기업에 몸담고 기업과 생사를 같이한다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라고 말했다.

‘흥미진진한 배움의 기회’는 더 많아질지 모른다. 지난해 4월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 리서치는 올해 자금부족, 경쟁심화, 투자자 이탈 등이 함께 맞물리면서 대다수 온라인 소매업체가 문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수도 아닌 ‘대다수’다. 불운한 닷컴기업들이 남긴 쓰레기를 처리해 주는 닷컴벌처들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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