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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빠져 애 팽개친 30대女 집에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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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경기도에 사는 주부 A씨(38)는 2009년 뒤늦게 첫딸을 낳았다. 하지만 늦둥이를 얻은 기쁨도 잠시, 시원찮은 남편의 벌이 탓에 부부 싸움이 잦아졌다. 결국 남편은 딸이 돌이 될 무렵 가출했다. A씨는 우울증이 심해졌고 폭음을 일삼았다. 집안은 쓰레기로 넘쳐났고 딸은 방치됐다. 보다 못한 이웃이 지난해 3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를 했다. 집을 찾은 전문가들은 깜짝 놀랐다. 딸아이는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또래 아이들보다 많이 작았고 온몸엔 피부병이 번졌다. A씨는 6개월간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았고 딸은 따로 떨어져 그룹홈에서 8개월을 보냈다.

 #. 충북에 사는 초등생 B군(7)은 어머니가 재혼한 뒤 새아버지로부터 수년간 심한 폭행을 당했다. 계부는 B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무호스나 회초리를 휘둘렀다.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새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던 터라 아들이 당하는 폭행을 모른 척했다. 이웃의 신고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이 찾았을 때 아이의 엉덩이와 종아리는 시퍼렇게 멍이 든 채 부어 있었다. B군은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았다.

 아동 학대가 늘고 있다. 지난해 만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학대 신고 건수가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가해자는 대부분 부모였다.

 보건복지부는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1년 전국 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5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146건으로 전년(9199건)보다 10% 증가했다. 신고 뒤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 재차 신고한 건수도 1325건이나 됐다. 학대 받다 사망한 아동은 13명이었다.

 특히 부모 보호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만 3세 미만의 영아를 대상으로 한 학대가 급증했다. 2009년 455건, 2010년 530건, 지난해에는 708건이나 됐다. 영아 학대는 20~30대 젊은 층(69.7%)과 여성(66.7%)에서 많이 발생했다.

 신고된 영아 학대 사례 중 절반 가까이(48.1%)는 방임(방치)이었다. 부모가 제대로 입히지도, 씻기지도, 먹이지도 않은 것이다. 이런 아동들은 대부분 체격이 왜소한 데다 피부병 등 환경 관련 질병을 많이 앓았다.

 지난해 신고된 아동 학대 중 실제 부모와의 격리 등 보호조치를 받은 사례는 6058건이었다. 가해자가 부모인 사례가 83.2%인 5039건이나 됐다. 한부모 가정 사례는 44%였다. 방치, 욕설 등 정서적 학대, 신체적 폭력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젊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육아를 ‘부담’으로 느끼는 데다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등 남의 손에 맡기다 보니 자녀들과 유대감을 쌓을 기회가 적은 점을 영아 학대의 이유로 꼽았다. 서울신학대 황옥경 보육학과 교수는 “육아는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고 아주 어린 아이까지 어린이집에 맡기는 행태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 학대에 대해 적극적인 사회적 관심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화정 관장은 “학대 받는 아이들이 스스로 학대 사실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이웃 등 주변의 관심과 적극적인 신고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동학대자에 대해 상담과 치료를 강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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