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관중 꿈꾸는데 … 삽질하는 만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SK 이만수 감독(왼쪽)이 27일 대구 삼성전 8회 말 마운드에 올라온 뒤 바뀐 투수 박희수를 위해 직접 삽을 들고 마운드의 흙을 고르고 있다. [사진 MK스포츠]

이만수(54) SK 감독이 직접 ‘삽’을 잡았다. 이 감독은 27일 대구 삼성전 8회말, 투수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왔다. SK 왼손 불펜 박희수(29)가 연습투구 도중 불편함을 느꼈다. 공을 던지는 순간 몸을 지탱해주는 디딤발(오른발)이 닿는 곳에 흙이 움푹 파였기 때문. 경기장 운영요원과 심판진이 삽을 들고 마운드를 정비했다. 박희수는 다시 공을 던졌지만 오른발이 흔들리며 휘청대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보다 못한 이 감독이 직접 삽을 들고 마운드를 다듬었다. 대구구장을 메운 1만 명의 팬들은 5분 동안 야구가 아닌 ‘마운드 정비’를 지켜봐야 했다.

 2012 프로야구는 지난 18일 역대 최소경기(126경기) 2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세웠다. 사상 최초의 800만 관중 돌파가 가능한 속도다. 그러나 상당수 야구인들이 “자만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야구인들의 눈길은 ‘위험한 야구장’으로 향한다.

 ◆마운드·타석의 흙만이라도=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8개 구단 감독과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만났다. 야구장 환경 개선에 대한 건의가 이어졌다. 특히 ‘야구장 흙’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국내 구장의 흙은 쉽게 파인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경기 후반부가 되면 그라운드의 흙이 파여 있다. 타자와 투수가 편안한 상태에서 발을 디뎌야 강한 타구를 날리고 좋은 공을 뿌린다. 미국 구장의 흙은 쉽게 파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출신 투수 나이트(넥센)는 “미국의 흙은 단단하다. 그런데 한국 마운드의 흙은 부드럽고 쉽게 파여 디딤발이 미끄러질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화 정원석이 지난달 15일 인천 SK전에서 타구를 잡으려다 외야 펜스에 부딪쳐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다. [중앙포토]

 ◆위험한 그라운드·외야 펜스=올 시즌 내야수들은 유난히 불규칙 바운드가 많아 애를 먹고 있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내야 그라운드 상태가 엉망이다. 병살타가 될 타구가 실책이 되어 버린다. 고급 야구를 펼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말 프로야구장에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됐다. 구장들은 겨우내 흙을 갈아엎는 작업을 했고, 그 바람에 내야 그라운드 상태가 악화됐다.

 광고판 부착을 위해 딱딱하게 만든 외야 펜스는 여전히 선수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4월 15일 문학 SK전에서 외야 펜스에 충돌한 한화 정원석은 오른 엄지가 탈골돼 수술대에 올랐다.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LG 이병규의 타구를 점프 캐치로 잡은 강동우(당시 삼성)는 아웃카운트 하나와 야구 인생을 맞바꿀 뻔했다. 당시 강동우는 정강이뼈가 으스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어디서 쉴까=국내 야구장을 처음 접한 외국인 선수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질문이 “어디서 쉬나”다. 경기장 내 원정 선수들을 위한 라커룸과 샤워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7년, 일본에서 1년을 뛴 박찬호(한화)는 “한국 야구의 메카라는 잠실구장에서도 홈팀 선수들이나 여기자들이 지나가는 복도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정말 큰 문제”라고 했다.

 인천 문학구장(2002년 개장)을 제외한 국내 모든 야구장이 1980년대 이전에 지어졌다. 광주 야구장은 최근 신축에 돌입했지만 대구 야구장 신축은 답보 상태다. 선수들이 안심하고 마음껏 경기력을 펼치고, 관중은 편안하게 관전할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KBO와 각 구단은 물론 야구장 관리 운영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도 신경써야하는 과제다.

하남직·김우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