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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서 멈춰 요지부동… 40분 후 결국 견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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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05면

지난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청 앞 관세청 방향 큰길 한복판. 임시번호판을 단 K9 자동차가 느닷없이 섰다. 차량이 많은 강남의 대로라 이내 교통 정체 현상이 빚어졌다. 하지만 이 차는 40분 정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긴급 출동한 견인차에 끌려갔다. 이런 장면은 주변 사람들의 휴대전화 등으로 촬영돼 인터넷에 올라 한동안 화제 동영상으로 떴다.

현대·기아차의 야심작 K9 미스터리

자동차 전문지 탑라이더의 김한용 기자도 우연히 현장에 있었다. 그의 말은 이렇다. “K9이 보닛과 트렁크가 열린 채 도로 한복판에 멈춰 있었다. 길이 막히니 금세 길가로 옮기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30분 뒤 그곳을 다시 지나게 됐는데 차가 그대로 서 있었다. 동영상을 찍으니까 고객 시승용 차를 몰고 가던 기아차 직원이 카메라를 가리려 해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의문을 갖게 됐다.”

‘품질경영’을 강조해 온 현대·기아자동차가 최근 이런저런 차체 결함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기아차가 올해의 야심작으로 지난 2일 선보인 최고급 K9이 출시 보름 만에 주행 중 멈추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연비 좋고 디자인·성능까지 개선된 중소형차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에서 약진해 세계 5대 자동차업체의 반열에 올랐다.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매출과 순익을 거두고 있다. 제네시스·에쿠스·K9 등을 앞세워 중대형 고급차 선두 대열에도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품질 결함과 유사 디자인 시비 등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청 앞 큰길에 K9 자동차가 갑자기 멈춘 뒤 꼼짝하지 않자 교통정체가 빚어졌다. [사진 자동차 전문지 탑라이더 김한용 기자]

출시 전부터 BMW·아우디 디자인 모방설
K9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멈춰선 데 대해 기아차 측은 “연료가 바닥 나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전자식 변속기 조절레버의 고장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한용 탑라이더 기자는 “국산차가 멈추면 변속기를 중립에 놓고 길가로 빼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도로 한가운데 멈춘 차가 수십 분간 꿈쩍 못하는 걸 보고 뭔가 결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K9이 국산차로는 처음 장착한 전자식 변속기 조절레버가 말썽을 일으킨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파킹(P)·중립(N)·드라이브(D) 등 변속 조절레버는 자동차의 중요 부품에 속한다.

수입차 업계에서도 전자장치의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00년 들어 자동차에 전자장비가 속속 들어가면서 독일 고급차들도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 기아차가 최근 의욕적으로 전자장치를 신차에 넣으면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필수(자동차학) 대림대 교수는 “연료 문제라면 노상 주유를 하면 되는데 견인차까지 동원된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현장의 기아차 직원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아차 관계자는 “견인차로 빨리 옮기려고 했던 것이다. 차량 결함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런 사실을 기아차 경영진은 한동안 모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동영상은 17일부터 닷새간 국내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 등 해외 주요 사이트에 퍼졌다. 그런데 기아차 현장 직원들이 이 소동을 알리지 않아 경영진은 22일 일부 언론에 그 사실이 보도된 뒤 알았다. 기아차 관계자는 “당일 그 시승차를 운전한 직원이 부주의로 연료를 바닥나게 한 해프닝쯤으로 판단한 것 같다.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K9은 출시 이전에 디자인이 수입차와 비슷하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독일 BMW 본사의 연구개발(R&D) 담당 총괄 헤르베르트 디이스 사장은 지난 3월에 부분 공개된 K9을 본 뒤 “BMW와 디자인이 비슷하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국내 리서치회사인 마케팅인사이트가 실시한 e-메일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이 ‘K9 디자인이 다른 모델과 닮았다’, 그중 3분의 1은 ‘라디에이터그릴과 기어박스 등이 독일 BMW와 유사하다’고 응답했다. 자동차 전문지인 카미디어의 장진택 기자는 “BMW를 닮은 기어노브나 헤드램프, 전체 실루엣, 그리고 아우디를 닮은 휠 등이 모방 논란에서 주로 회자된다”고 전했다.

K9은 기아차가 독일 BMW 시리즈 등 고급 승용차 시장을 겨냥해 개발했다. 지난 2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K9 신차 발표회에는 기아차로는 드물게 정몽구 회장이 참석했다. 또 24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열리고 있는 부산모터쇼에서 기아차의 최고급 세단으로 전시되고 있다.

YF쏘나타 급발진 사고 땐 “운전 실수” 주장
이에 앞서 지난 6일 대구 순환도로에선 현대차의 YF쏘나타가 굉음과 함께 최대시속 130㎞로 달리다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 7대를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이 차의 블랙박스에 담긴 동영상엔 급발진임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다.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네티즌은 “아버지의 차다. 30여 년 운전경력이 있는데 20초 가까이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 페달을 혼동하겠나”라는 게시글도 남겼다. 현대차 측에선 이 사고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만 급발진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차량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차체 결함 가능성을 부인했다.

흔히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급발진은 그동안 운전자의 실수로 결론짓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 최근 차량 블랙박스의 동영상 기록에 힘입어 급발진 여부를 가려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지난 14일 민관합동조사반을 꾸려 급발진 사고 조사에 나섰다. 정의선 현대차 총괄부회장은 ‘급발진 의심사고에 대한 대응책을 빈틈없이 하자’는 내용의 e-메일을 임직원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를 포함한 자동차 업계는 각사의 급발진 관련 사고에 대해 여전히 “차체 결함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급발진 같은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자동차 업계가 원인을 분석할 능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는 점점 기계제품에서 전자제품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지만 해당 기술을 알 만한 전문가가 부족하다. 국산차에 들어가는 전자장비 중 외국산 부품이 많아 자체 해결책을 마련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자동차의 전자장비가 늘어나면서 생명과 직결되는 차체 결함 발생 가능성이 커지자 해외 자동차업계는 급발진 방지 장치 등을 기본으로 장착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가속 페달보다 브레이크 페달을 우선 작동하게 하는 ‘브레이크 오버라이드(BOS·급가속 방지)’ 장치 장착 등을 의무화했다.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가속 상황에서 제동 페달을 밟았을 때 중앙 컴퓨터가 차량을 자동적으로 멈추도록 하는 장치다. 현대차도 이달부터 미국에 판매되는 모든 차량에는 BOS를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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