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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시트’는 그나마 감당할 만 … 스페인 파국은 재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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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20면

앤드루 웰스 피델리티 채권부문 CIO
앤드루 웰스 CIO는 피델리티월드와이드 인베스트먼트에서 전 세계의 국채와 회사채 등 채권 투자를 총괄한다. 최근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은 50대50.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데 앞으로 3~5년이 걸릴 것’이라는 내용의 긴급 보고서를 내놓아 관심을 모았다. 그렉시트는 ‘그리스(Greece)’와 ‘엑시트(exit)’의 합성어다.

유럽 현지·국내 전문가가 진단하는 ‘그리스 나비효과’

-50대50은 어떤 뜻인가.
“어느 한쪽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은 주로 정치적 관점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 17일 예정된 그리스 2차 총선이 유로존 이탈의 분수령이다.”

-위기 해결에 3~5년씩이나 필요한가.
“유로존 위기의 근본 해법은 재정통합이다. 3~5년은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통합의 필요성을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스페인 등 부실재정 국가들은 임금 수준을 낮추고 은행 부실채무를 정리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비교적 작은 나라 그리스가 왜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드나.
“그리스의 상징성이 크다. 세계 투자자들은 그리스의 긴축안 반대를 유로존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를 통제하지 못하면 유로존 결속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약해진다.”

-결국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한다면.
“그리스의 경제 규모는 유럽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 이탈 자체는 유로존이나 글로벌 경제가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그리스보다 훨씬 큰 스페인·이탈리아 등의 금융불안과 도미노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이 두 나라를 안정시키는 게 중요하다.”

-도미노 이탈을 막을 방법은.
“유럽연합(EU)은 두 나라 국민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긴축안을 이행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민간 은행은 물론 이들 국가에 돈을 빌려준 유럽 각국 은행들의 자본을 빨리 확충해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통해 민간 은행들에 1조 유로 규모의 돈을 풀었지만 그 정도론 부족하다. 기존 3년 만기 대출을 5년 만기로 연장해 은행들이 자금을 원활히 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나라의 경제 상태는.
“스페인은 은행 자본 확충이 시급하다. ECB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에도 자금 지원을 요청해야 할 상황이다. 이탈리아는 그나마 조금 낫다.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글로벌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현재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많이 위축돼 있다. 따라서 지역으로는 신흥국, 상품으로는 주식으로 대표되는 위험자산에서 먼저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올해 가을까지는 세계 주식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유로존 위기 때문에 마땅한 투자 대상이 보이지 않는데.
“꼭 그렇진 않다. 미국의 주식·채권은 검토할 만하다. 미국의 경제지표가 지난해 말보다는 못하지만 경제성장 여력은 여전히 충분하다. 또 위기 속에서도 현금이 넘쳐나는 기업들이 있다. 이런 우량 기업의 주식과 회사채는 계속 유망하다.”

-한국 증시는 어떻게 보나.
“정보기술(IT)·조선·자동차·화학·철강·통신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이 있다. 호주와 홍콩이 부동산·금융에, 대만이 IT에 편중된 것과 대비된다. 특히 한국 기업은 유럽·일본 기업이 침체된 사이 세계 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증시는 저평가돼 있다. 다만, 수출 의존도가 높아 주식시장과 외환시장 변동성이 높다는 게 단점이다.”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
김석규 대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그리스발 한파에 맞설 수 있는 훈풍은 중국의 경기 부양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경기 부양이 본격화하면 국내 증시에선 내수 업종보다 수출 업종의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직은 그리스의 그늘이 더 깊어 보인다. 그리스 위기가 불거진 이달 들어 25일까지 코스피는 8% 떨어졌다. 정작 위기의 진앙인 유럽의 프랑스(-5%)·영국(-7%) 증시보다 하락폭이 크다.

-왜 유럽보다 한국이 더 충격을 받나.
“그리스 때문에 현금·채권 등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화됐다. 선진국 글로벌 투자자들 눈에 한국은 아직 신흥시장에 가깝다. 신흥시장은 큰 틀에서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특히 지난해 말과 올해 초의 미국 경기 회복세 이후 3월부터 세계 경제는 주가흐름을 바꿀 만한 모멘텀(Momentum·동인) 공백기였다. 특별한 이슈가 없어 서로 눈치만 보던 상황에서 그리스라는 해묵은 악재가 터져 투자자들이 신흥시장에서 돈을 빼가는 빌미가 됐다.”

-그리스와 유로존은 어떻게 될까.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이 예전보다 커진 건 분명하다. 그런데 더 위험하고 주목할 나라는 스페인이다. 스페인 저축은행들은 부동산시장 거품이 커졌을 때 개인들에게 주택자금으로 꿔 줬다가 거품 붕괴로 받지 못한 돈이 많다. 이 부실이 엄청나다. 스페인이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유로존은 해체 위기를 맞게 된다. 이탈리아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부동산 거품이 없었고, 가계 부채도 상대적으로 적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성장 감속의 중국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경기 부양을 할까.
“중국이 경기 부양을 하리라는 건 의심할 바 없다. 중국 정부는 이미 경기 바닥 시점을 대비해 준비를 해 놓았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제시한 경제 목표치가 일종의 증명서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7.5%,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로 제시했다. 보통 총통화(M2) 증가율은 GDP 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합친 수치다. 그렇다면 총통화 증가율은 11.5% 정도였어야 했는데, 실제 중국 정부가 결정한 총통화 증가율은 14%였다. 2.5%포인트의 간극을 돈을 풀어 메우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돈을 풀까.
“이미 지난해 말부터 이번 달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은행의 지급준비율(예금 중 중앙은행에 의무 예치하는 금액 비율)을 내렸다. 이번 달 중국 경제성장률이 바닥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하반기에는 소비 진작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국가 재정을 풀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가장 유망한 투자 지역인가.
“중국이 훈풍을 일으키면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전체에 돈이 몰릴 수 있다. 한국 투자자라면 굳이 중국이 아니더라도 국내 증시의 중국 수혜 업종을 찾아 투자하면 되지 않겠나.”

-국내 증시에선 음식료·통신·의류 등 내수 업종이 선방하고 있다. 이들이 중국 경기 부양 때 수혜 종목이 되지 않을까.
“내수업종은 중국 수혜가 있어도 기본적으로 국내 실적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소비 여력은 크지 않다. 가계 부채가 많고 임금증가율은 물가를 따라잡지 못한다. 당분간 내수업종의 시장가치가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수업종 주가는 반짝 상승세 정도에 그칠 것이다.”

-‘전차 군단(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전자·자동차 대형주)’이라 불리는 대형 수출주는 그동안 너무 많이 올랐는데.
“그렇더라도 글로벌 투자 자금이 재유입되면 추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전차군단 투자가 부담스럽다면 IT·자동차 부품주 등 연관 업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앤드루 웰스(Andrew Wells·50) 1996년 초단기 자금인 머니마켓펀드(MMF) 트레이더로 피델리티에 합류한 뒤 아시아 채권부문 CIO를 거쳐 2007년부터 글로벌 채권부문 CIO를 맡고 있다.

김석규(52) 한국투자신탁 펀드매니저로 출발해 교보투신운용 대표를 역임했다. 2008년 7월 신설된 GS자산운용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와 미국 오리건주립대 MBA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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