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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간첩 "종북이 비판 못하는 5대 금기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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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에 대한 입장 표명 요구,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 회피. 종북(從北) 의혹을 제기하는 쪽과 받는 쪽 사이에 끝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22일 밤 MBC ‘생방송 100분 토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논쟁을 촉발한 건 토론자가 아닌 시민논객 홍지영(28·여)씨였다. 그가 통합진보당 이상규(서울 관악을·사진) 당선인에게 물었다. 이 당선인은 4·11 총선 직전 보좌관의 여론조작 시도가 들통나는 바람에 사퇴한 이정희 전 대표 대신 출마해 당선됐다. 현재 당권파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태의 원인이 당권파의 종북주의가 아닌가 하는 국민들의 의문이 있다. 북한 인권, 3대 세습, 북핵에 대해 이상규 당선인의 입장을,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다’라는 식의 말 돌리기가 아닌 정확한 입장을 말해 달라.”

 이 당선인은 웃으면서 말을 시작했다. 종북이란 말이 나오면 이정희 전 대표나 이석기 당선인 등 당권파 인사들은 쓴웃음부터 보이곤 했다. ‘아직도 이런 시대착오적 질문이 나오나’라는 반응이다.

 “종북이란 말이 횡행하는 것에 대해, 아직도 군사독재시대의 색깔론이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 유감이다. 양심의 자유를 옥죄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평양에 갔던 경험을 덧붙였다. “콘크리트에 색칠을 안 해서 굉장히 회색빛이었다. 남쪽에서 살아온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술은 좋은 편인데, 술병을 기울이거나 거꾸로 들어보면 샌다. 병뚜껑 기술이 정교하게 돼 있지 못한 거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필요하고, 북에 대해 동포애적 관점, 그리고 통일의 상대방으로서 협력과 교류를 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초 속에서….”

그러자 홍씨가 그의 말을 끊었다. “말을 돌리고 계신데, 정확한 입장을 말해주면 감사하겠다.”

 이에 이 당선인은 “북을 연대와 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기초 위에서”라며 앞서 한 말을 반복했다.

  지켜보던 토론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나섰다. “한 개인에 대해서 당신 주사파냐고 묻는 건 실례다. 하지만 의원은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뚜렷이 밝히고 유권자를 대변해야 한다.”

 이번엔 사회자가 나서서 “시민논객의 3대 세습·인권·핵 문제에 대해 답변을 유보하는 건가”라고 이 당선인에게 재차 물었다. 이 당선인은 “이분법적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홍씨는 “유권자로서 당연한 권리고, 전 국민이 궁금해 하는 사안이다”며 답변을 재차 요청했다. 하지만 끝내 이 당선인은 답을 피했다.

 지난 11일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했던 이석기 당선인도 흡사한 발언을 했다. 백씨가 세습·인권·핵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문제로 봐선 안 되고 화해와 협력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이상규 당선인은 세습과 관련된 질문에 “북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했고, 이석기 당선인은 “북한의 시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가 끝나자 인터넷에선 종북주의 토론이 큰 화제가 됐다. “종북주의의 모습을 날것으로 봤다” “종북은 진보가 아니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시청자 게시판엔 “돌직구녀의 질문을 받는 이 당선인의 태도는 투스트라이크 이후 번트 모션 취하다 파울로 삼진 아웃된 느낌”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23일 오전에는 ‘이상규·돌직구녀·100분 토론’이란 단어가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돌직구녀’는 ‘강하고 묵직한 직구처럼 일관된 논점으로 상대의 허점을 끝까지 파고들었다’는 뜻이다.

 한편 귀순 간첩 김동식(47)씨는 최근 “90년대 초반 북한 당국이 남한 지하당에 ‘북한의 경제난을 포함해 일반적인 것은 비판해도 좋다. 그러나 부자 세습·주체사상·정치체제·북한 인권·북한 지도자 등 5개 금기는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인 225국이 간첩단 왕재산의 총책 김덕용(49)에게 보낸 지침에도 담겨 있다.

 지금껏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어느 누구도 북한의 세습·인권·핵을 거론하지 않았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진보신당 김종철 부대표는 “이정희 대표도 ‘3대 세습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고 해서 많은 이들의 의문을 샀다”고 지적했다.

 ◆비당권파 “국민 눈높이 맞출 것”=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23일 ‘새로나기특별위원회(새로나기특위)’를 구성했다. 위원장을 맡은 박원석 비례대표 당선인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있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탈패권주의와 정파주의 ▶노동정치 복구 ▶폐쇄적 진보 탈피 ▶대국민 소통능력 제고 등을 혁신 방향으로 제시했다.

강인식 기자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운동권의 한 분파로 한국 사회의 문제가 미국의 개입으로 인한 남북 분단에 기인한다고 본다. 반미와 친북은 NL의 사상적 버팀목이다. 80년대 중반부터 김영환씨의 ‘강철서신’을 매개로 주체사상이 NL에 큰 영향을 줬다. 재야의 NL계는 2000년대 중반 민노당에 대거 입당하면서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가 NL계다.

종북주의의 금기와 대응논리

▶ 종북이 비판 못하는 5대 금기

- 부자세습·주체사상·정치체제· 인권· 지도자

▶ 5대 금기에 대한 질문 나올 때 대응논리

- 군사독재의 이분법적 색깔론이라며 반박
- 종북주의는 시대착오적이라며 존재 부인
- 지난 시대 종북이 있었다면 개별 문제로 한정
- 북 경제난 등에 대한 일반적 비판으로 전환
- 북 을 통일의 상대로 존중한다는 자세 견지

자료 : 귀순 남파 간첩 김동식의 공안사건 재판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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