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에닝요 사태’가 던진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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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파란 눈의 선수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장면을 당장은 볼 수 없게 됐다. ‘21세기 글로벌 사회’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이지만, 피부색과 인종·혈통이 다른 사람에게 태극마크를 허락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브라질 출신 공격수 에닝요(31)의 특별귀화가 사실상 무산됐다. 대한체육회는 22일 법제상벌위원회(위원장 반장식)를 열었다. 에닝요를 복수 국적 대상자로 법무부에 추천할지를 안건으로 다뤘다. 결과는 ‘불가’였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에닝요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 소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체육회는 특별귀화 대상자라 하더라도 ‘국어 능력과 대한민국 풍습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에닝요는 이 부분에서 낙제점수를 받았다.

 축구계 전반에 미칠 파장도 고려했다. 에닝요와 같은 포지션에서 뛰는 국내 선수들의 입지, 섣불리 복수 국적을 허용할 경우 K-리그의 외국인 쿼터 제한이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염두에 뒀다. 이는 지난 7일 열린 에닝요의 첫 번째 특별귀화 추천 심사 결과와 다르지 않다.

 대한축구협회는 에닝요 귀화 시도 노력을 중단키로 했다. 이미 두 차례나 실패한 데다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코앞이라 외국인 선수 귀화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급단체의 결정에 대해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원망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맞지 않는 결정’이라는 불만이다. 앞서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문태종·문태영·김한별(이상 농구)은 혼혈 하프 코리언이고, 공상정(쇼트트랙)은 화교 3세다. 직·간접적으로 우리와 끈이 닿아 있을 뿐이다. 반면 체육회는 에닝요를 비롯한 순수 외국인을 복수 국적 대상자로 추천한 적이 없다. 문태종·태영 형제의 한국어 실력이 에닝요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체육회는 이번 결정이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첫 번째 심사 이후 축구협회에 에닝요의 부적격 사유를 조목조목 알려줬으나 두 번째 심사에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에닝요의 한국어 실력에 대해 선수 자신의 개선 의지도, 축구협회 차원의 지원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최종준 체육회 사무총장은 “한국인으로서 최소한의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한국 국적을 내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복수 국적 제도는 외국인에게 한국 국적을 추가로 허락하는 제도다. 한국인으로서 권리를 보장해 주는 만큼 선정 과정이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닝요 특별귀화 논란은 ‘한국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때 ‘한민족’이라는 단어가 한국인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쓰인 적이 있지만 다문화가정이 급속히 늘면서 이러한 개념은 자취를 감췄다. 더 이상 피부색과 인종으로 한국인 여부를 구별할 수 없는 시대다. 21세기 다문화 사회에서 ‘한국 사람’의 정의는 무엇일까. ‘한국사람답다’는 건 또 어떤 의미일까. 에닝요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다.

송지훈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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