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계적 갑부 저커버그의 작지만 큰 결혼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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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0억 달러(22조원) 갑부의 결혼식에 값비싼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유명인 결혼식에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부의 웨딩드레스도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모르는 평범한 것이었고, 결혼 반지는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유명 디자이너 제품도 아닌 평범한 루비반지란다. 결혼식은 자기 집 뒷마당에 동네 음식점에서 시켜온 음식을 차리고 친한 친구 등 90여 명만 초대해 치렀다. 미리 청첩장도 돌리지 않아 모두 빈 손으로 갔다가 결혼식인 것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고들 한다.

 포브스 선정 세계 29위 부자인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28)와 예비의사 프리실라 챈(27)의 결혼식 이야기다. 그들의 결혼식은 이렇게 소박했다. 하지만 이 결혼식 소식은 일약 화제를 모으며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통해 알린 결혼식 소식엔 7시간 만에 58만 번의 ‘좋아요’ 클릭이 올랐다. 결혼식은 작았지만 훈훈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큰 결혼식이었다.

 이들의 작은 결혼식 소식은 호화 결혼식이 판치는 우리의 세태를 돌아보게 한다. 최근 우리나라 혼례문화는 한마디로 ‘고비용·무차별 초청’으로 표현된다. 고비용 구조로 인한 호화결혼 경쟁이 가열되면서 혼주의 부담은 날로 늘어나지만 그러는 한편에선 혼수 갈등도 심화돼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또 무차별 초청으로 인해 일반 가계의 경조사비 지출 부담도 만만찮다. 최근 한 생명보험사에서 50세 이상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경조사비가 부담이 된다고 답한 사람이 83.4%나 됐다.

 국무총리실이 지난해부터 ‘건강한 사회 만들기’ 과제로 관혼상제 허례허식 줄이기를 선정하고, 여성가족부가 ‘검소한 혼례문화 확산’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뚜렷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 측은 “규제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의식개선만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말한다. 저커버그와 같이 소박한 실천을 하는 사회지도층이 늘어나는 것만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혼례의 허례허식 문화를 개선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