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엄청난 억척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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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04면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중소기업청장이던 시절, 한 조찬 모임에서 그의 ‘예언’을 들었습니다.
“제가 어디 가면 두 가지가 크게 히트할 거라 말하고 다닙니다. 하나는 막걸리요 다른 하나가 판소리입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국립극장에 가면 완창 판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공연 시간이 4~5시간은 기본이라 처음에는 지레 질겁을 하죠. 그런데 이게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가만히 듣다 보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지난주 토요일 ‘이자람의 억척가’ 공연을 보면서 저는 홍 장관의 예언이 떠올랐습니다. 개막 두 달 전 매진, 자리를 늘려도 또 매진, 좌석은 정말 단 하나의 빈 자리도 없이 완전 만석…. 근래에 그것도 판소리가 이렇게 인기를 끈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공연을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체구가 별로 크지도 않은 ‘예솔이’ 이자람은 그 넓은 무대를 혼자서 쥐락펴락했습니다. 눈썹 찡긋할 때마다, 어깨 으쓱 들 때마다 다른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판소리로 듣는 21세기 언어들은 낯선 듯 신선했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은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해졌습니다. 2시간20분이 그렇게 훌쩍 지나갔습니다.

무릇 전쟁에선 선봉장이 중요합니다. 21세기 문화전쟁에서 우리 드라마엔 배용준, K팝엔 보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자람이 판소리로 나서려 합니다. 남은 우리는 ‘귀명창’이 되어 응원하면 어떨까요. 예언이 다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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