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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78개의 음반으로 말한다, 재즈란 이런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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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재즈: 기원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개리 기딘스·스콧 드보 지음
황덕호 옮김, 까치
742쪽, 2만5000원

소음으로 넘쳐나는 시대, 좋은 음악은 더욱 귀해진다. 신간에 따르면 재즈는 미국의 고전음악이다. 1987년 미 의회는 “재즈가 미국의 값진 보석”이라고 천명하는 결의안까지 통과시켰다. 단 시장에서는 찬밥이다.(659쪽) 음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불과 3%. 사정이 그러하니 일부 공적지원금까지 받는다.

 1890년대 미 남부에서 출발한 지 100여 년, 서양 클래식처럼 뒷방 늙은이로 밀린 것일까. 공저자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세대에게 재즈란 록과 힙합 이전에 유행했던, 그야말로 옛날 음악일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재즈』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700여 쪽 분량에 작은 활자, 그럼에도 음반 자켓 사진 하나 없다.

 불필요한 친절로 독자에게 아부하지 않겠다는 결기로 비춰지는데, 정보량과 스케일은 정평 있는 개설서인 요함임 E 아렌트의 『재즈북』, 존 F 스웨드의 『재즈 오디세이』에 못지 않다. 단 서술방식이 독특하다. 재즈 100년사를 훑지만, 음반 78개를 추렸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 에릭 돌피의 ‘저기 바깥으로(Out There)’, 아트 블래키 ‘모자이크’ 등.

 78개 음반 중 한 곡씩을 뽑아 곡의 흐름과 감상 포인트를 도표로 처리했다. 분 초 단위로 누구의 어떤 악기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대단한 열정인데, 그걸 비빌 언덕 삼아 재즈의 형식, 스타일과 역사를 정리했다. 때문에 “재즈가 뭐지” 하는 가벼운 호기심으로 덤볐다가는 큰 코 다친다. 단 재즈를 더 파내려 가려는 이들에게 가뭄 끝 단비일 수도 있다.

 등장하는 음반 78개는 재즈 100년의 명반은 아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은 없다. 좋은 독자라면 이 책에서 암시 받아 새롭게 가지치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재즈란 무엇이지. 뭐가 이걸 특별한 음악으로 만들지. 왜 요즘엔 에스닉 재즈로 발전해 국악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음악과 어울릴까.

 ‘음악 이상의 음악’인 재즈가 갖고 있는 활력 혹은 고유한 DNA가 궁금하면 이 책에 도전해야 한다. 사실 재즈가 대중의 사랑을 받아본 일은 지난 100여 년 사이에 없었다. 1930년대 스윙시대조차 그랬다. 재즈는 늘 소수의 음악이었다. 크게 히트한 몇몇 음반을 빼면 감식안을 갖춘 사람은 항상 드물었다.

 그래서 대중음악도 아니고 고급음악도 아닌 ‘사이 음악’ ‘경계 음악’이다. 더 놀라운 건 눈에 안 보이는 영향력이다. 블루스·록앤롤·가스펠, 그리고 R&B·펑크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지 않은 음악이 없을 정도이다. 여전히 ‘대중음악의 저수지’인데, 그 실체가 궁금하다면, 이 책에 도전해야 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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