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경쟁·사랑 … 레슬링으로 메쳐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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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청소년극 ‘레슬링시즌’에서 남녀 배우가 데이트하는 장면을 레슬링 시합으로 표현한 장면. [사진 국립극단]

이 곳은 레슬링 경기장이 아니다. 살과 살을 맞대고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는 지름 9m의 원형 매트는 연극무대다. 16일 서울 국립국단 스튜디오 하나에서 청소년 연극 ‘레슬링 시즌’의 오픈 리허설이 펼쳐졌다.

 ‘쫄쫄이’ 선수복을 입고 등장한 배우 8명은 힘찬 기합을 넣어가며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흉내만 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두 달 동안 전문 트레이너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배우들은 서로 엎어치고 메쳤다. 고등학생 역인 이들이 연애를 하고, 우정을 나누고, 몸싸움을 할 때도 레슬링 기술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우리 데이트 할까?”라고 대사를 하면 심판이 호각을 불고 두 남녀 배우가 경기 시작 자세를 취하는 식이다. 경기가 거칠어질 때마다 심판은 “위험수위!” “스포츠맨 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외치고 경고를 줬다. 배우들은 금새 땀으로 온 몸이 범벅됐다. 배우 하지은(29)은 “고등부 시합에 출전해도 되겠다는 칭찬을 들었다. 레슬링복이 부담스러워 배우들 모두 닭가슴살과 채소를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했다”고 털어놨다.

 ‘레슬링 시즌’은 국립극단이 지난해 화제작 ‘소년이 그랬다’ 이후 두 번째로 내놓은 청소년극. 청소년 희곡작가 로리 브룩스가 원작을 썼고, 2000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후 청소년극 열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고등학교 레슬링부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반목하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 속에 왕따·폭력·사랑·정체성 혼란 등 청소년이 매일 대면하는 문제도 들어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내용뿐만 아니라 연극의 형식과 연기 방법도 레슬링에서 차용했다는 점이다. 김옥란 드라마투르그(극단에 상주하는 비평가)는 “레슬링 매트는 시합 공간이자 학교의 생활공간이다. 경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행동을 레슬링 동작에 기반해서 풀어갔다”고 설명했다.

 왜 하필 레슬링일까.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 연구소 유홍영 부소장은 “인류사에서 몸과 몸이 부딪치는 가장 오래된 스포츠라 혈기 왕성한 청소년들이 생체 에너지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운동”이라며 “체육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등 요즘 우리 청소년들은 에너지를 표출한 경로가 없는데 연극 속 매트는 몸과 몸이 부딪치고 성장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70분 공연이 끝나면 학생 관객과 배우들이 청소년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연극 ‘레슬링 시즌’=31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1만~3만원. 1688-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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