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한이 자초한 전술핵 재배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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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의회가 공화당을 중심으로 전술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지난주 한국이 포함된 서태평양 지역에 미군의 재래식 전력을 확대하고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내용이 담긴 ‘2013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찬성 32표, 반대 26표로 가결했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에 전술핵 재배치의 타당성과 세부 계획을 검토한 보고서를 90일 이내에 제출토록 요구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한·미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돼 온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워싱턴에서 법안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 움직임 등 도발적 행동으로 북한이 전술핵 재배치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이 난망(難望)하다는 인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더욱 위태롭게 하는 무모한 발상이다. ‘핵 없는 세상’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비(非)확산 구상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유럽 동맹국에서도 전술핵 철수를 추진 중이다.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백악관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허한 주장이기도 하다.

 1991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남한에 남아 있던 100여 개의 전술핵을 미국이 철수함으로써 한국은 비핵 지대가 됐다. 이를 근거로 한·미 양국은 북한에 핵 폐기를 요구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6자회담을 가동시킬 수 있었다. 미국 핵우산으로 보호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는 것은 심리적 위안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실제 효과는 거의 없다. 북한에 핵 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중국을 자극하는 역효과와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다. 전술핵 재배치로 북핵 문제 해결을 중국에 압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중국은 그보다 자신을 겨냥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전술핵 재배치는 실효성은 없으면서 한반도의 핵전쟁 위험만 가중시키는 위험한 카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정공법으로 풀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