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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의 문화적 차이 풀어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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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사회평론 펴냄)라는 책으로 서점가의 눈길을 끌었던 정찬용 님은 영어를 가르치는 대학의 교수이거나, 학원의 영어 강사도 아닙니다. 그는 독일의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따낸 환경개발학 전문가이고, 영어보다는 독일어에 더 가까운 사람이지요.

그의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사회평론 펴냄)는 영어 공부에 대한 대단한 비결을 내놓았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것이라기보다는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어버릴 수 있는 화끈함에서였을 지 모릅니다.

그가 이번에는 독일에서 공부하며 살았던 이야기들을 모은 산문집 '치즈와 된장찌개'(사회평론 펴냄)를 펴냈습니다. 9년간의 독일 유학 시절을 반추하며 그는 유학이라는 주제를 풀어내려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고 싶었다고 머리글에서 밝힙니다.

"유학이란 인생의 황금기랄 수 있는 청춘의 후반부를 투자하는 매우 중요한 도전"이기 때문에 유학의 목적과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게 그가 이 책을 쓴 바람이랍니다.

스물 여덟에 독일 유학에 떠나기로 마음 먹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모든 해외 유학이 그러하듯, 언어를 익히기 위해 지은이는 유학 떠나기 몇 달 전부터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합니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독일어로 이야기하고, 어쩌다 한국어가 튀어나오면 벌금으로 천원씩을 내야 했지요. 나중에는 독일어로 대강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정도였답니다.

그러나 정작 독일에 가게 됐을 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처음 만난 독일 여인은 지은이의 독일어를 단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영어로 이야기하자고 하지요. 지은이가 공부했던 독일어가 현장의 독일어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깨닫는 것이죠.

지은이는 하이델베르크에서 기차로 일곱 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있는 도시 '도르트문트'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처럼 지은이도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난관과 실수를 거듭하게 됩니다. 그곳에 먼저 정착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만 실수를 면할 수야 없지요.

무엇보다 언어에 있어서 실수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은이는 15년 전의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살려내서 독일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독일의 현장 사진을 곁들여서 현장 분위기는 더 생생합니다.

이 책은 독일 유학을 위한 안내서는 아닙니다. 그냥 지은이의 삶 가운데 중요한 한 부분이었던 독일 유학 시절을 되돌아보며, 독일인과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의 차이, 그리고 그 안에서 좌충우돌하던 젊은 한국인의 한 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쓰던 독일어 사전이 워낙 오래된 것이어서, 살아있는 언어를 구사하지 못해 부끄러웠던 기억이라든가, 어느 날 갑자기 독일어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뚫리는 경험 등의 언어 학습에 대한 이야기는 기본입니다.

거기에 우리나라 대학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독일 대학,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 유학생이 겪어야 했던 문화적 충격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방학 때마다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해야 했던 유학생의 고단한 일과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9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 스피디한 기행문처럼 펼쳐놓은 이 책에서 지은이는 독일인의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의 사회 관계가 사람 사이의 끈끈한 애증 관계에서 비롯된다면 독일에서는 자연인으로서의 인간 존재에 대한 수긍과 개인 존중이라는 것이지요. 하나의 사회가 가지는 특징을 나름대로 알게 되면서 지은이는 박사 학위를 받은 것보다 더 값진 인생 공부를 했다고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아직은 그리 가까이 느껴지지 않는 독일어와 독일 문화. 그 속에서 9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한 젊은 인생의 이야기를 살펴 보는 일은 또 하나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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