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엘피다, 미국 마이크론 품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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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세계 제3위의 반도체 D램 업체인 일본의 엘피다 메모리가 결국 4위의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넘어가게 됐다. 이로써 D램 시장에서 일본 기업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은 6일 “파산 상태인 엘피다의 관재인(한국의 법정관리인)이 이르면 이번 주초에 마이크론을 우선협상자로 정식 선정하고 8월 21일까지 도쿄지방법원에 갱생 계획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엘피다 측에도 이 같은 입장이 전달됐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지난 4일 열린 엘피다 인수 2차 입찰에는 마이크론 외에도 미국 TPG캐피털과 중국 호니캐피털로 이뤄진 미·중 투자펀드연합이 참가했다. 이들이 제시한 가격은 2000억 엔(약 2조8000억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마이크론과 비슷했다. 그러나 마이크론은 추가로 1000억원을 설비투자에 지원하겠다고 제시한 데다 같은 반도체 업종이어서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이크론이 엘피다를 인수하면 세계시장 점유율 24.8%로 SK하이닉스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서게 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D램 세계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42.2%)가 수위이며, 다음은 SK하이닉스(23%)·엘피다(13.1%)·마이크론(11.6%)의 순서였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마이크론이 엘피다의 생산능력을 더하게 되면 메모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더그 프리드먼 RBC캐피털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D램 시장은 점유율이 높은 대형 업체들이 가격 결정에 역할을 하는 구도”라면서 “공급량이 많아지면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산 효율성 면에서는 마이크론과 엘피다가 SK하이닉스에 뒤처지기 때문에 자칫 엘피다 인수가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마이크론과 엘피다는 여전히 40나노급 이상 제조공정에 머물러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이미 30나노급 이하 공정으로 주력을 전환했다. D램을 30나노급 공정으로 생산할 경우 40나노급 제품보다 50% 이상 생산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앞서게 된다. 그러니 단순히 마이크론과 엘피다를 합한 점유율이 SK하이닉스보다 조금 높다고 해서 우위에 섰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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