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매각 서둘러야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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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호 30면

또다시 우리금융 매각이 시도되고 있다. 우리금융은 역대 정권이 해결해야 할 골치 아픈 문제였다. 이번이 세 번째 매각 시도인 동시에 아마도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게 좋은 생각일까.

우리금융 주식은 주가순자산비율(PBR) 0.57배,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5배로 거래되고 있다. 문제가 없는 다른 은행의 기준으로 보면 이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은행들이 침체기를 겪는 가운데 우리금융의 성적은 그중에서도 최하다. 하지만 우리금융이 나쁜 투자 대상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우리금융은 원래 부실은행 정리 차원에서 만들어졌지만 요즘엔 경영도 안정되고 수익도 나고 있다.

투자의 첫 번째 원칙이 싸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상투적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우리금융에서 지금 손을 터는 것은 정말 쌀 때 파는 것이다. 대신 매입자는 아주 달콤한 거래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손해를 보고 파는 사람은 납세자가 된다. 문제는 2008년 이후 우리금융을 살 만큼 재무제표가 건전하고 과감한 경영을 하는 은행은 몇 곳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금융을 외국 은행, 혹은 최악의 경우 간교한 사모펀드에 파는 것은 정치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더욱이 한국 파트너가 인수할 경우 은행 구조조정 정책의 ‘성배(聖盃)’라고 여겨지는 소위 메가뱅크(초대형 은행)를 출범시킬 수도 있다.

메가뱅크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것이 금융 경쟁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한국의 은행들은 다른 업종의 유명 회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경쟁력이 없는 중형 은행을 또 다른 경쟁력이 없는 중형 은행과 합칠 경우 ‘한국판 HSBC’가 탄생할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들은 국내에서 먼저 경쟁력을 키웠다. 삼성전자의 경우 규모가 아니라 경쟁력을 갖춰서 소니·RIM·노키아 등을 제압할 수 있었다. 한국 은행들이 정말 발전하려면 먼저 그런 경쟁부터 해 내야 한다.

투자은행 쪽에선 다른 얘기를 하지만, 여러 증거를 보면 대형 인수합병(M&A)으로 발생하는 시너지의 득은 제한적이다. 반면 자생적 성장으로 힘을 얻게 된다는 주장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최근엔 한국 은행들의 해외부문 수익이 개선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제 영업력을 개선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어떨까.

전 세계 자산 규모 50위권 은행 가운데 한국 은행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종종 지적된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한국계 초대형 은행의 지원 없이도 한국 대기업들은 해외 거래 시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의 빅4 은행의 규모가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해 상반기에 KB국민은행의 자산은 2310억 달러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2%다. 우리금융의 자산이 더해진다면 GDP의 42%가 될 것이다. 하지만 KB와 우리금융이 합병한들 씨티그룹이나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보다는 여전히 작을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의 전형인 두 은행의 자산은 각각 미국 GDP의 12.7%, 13,6%밖에 되지 않는다.

내 생각엔 KB와 우리금융의 규모나 핵심 사업은 적당할 정도로 평범하고, 이해하기 쉽고, 보수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합쳐져 ‘쓰러지기엔 너무 큰’ 기업이 되면 무책임하게 행동할 가능성도 있어 이를 미리 막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대가를 치를 사람들은 아마도 이 기사의 독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좀비 거인’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 때문에 대가를 치르고 있는 영국의 내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말이다.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2010년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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