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죽은 포퍼가 산 홉스봄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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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와 에릭 홉스봄은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1994년 92세로 타계한 포퍼는 젊은 한때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으나 즉시 '회개한' 뒤 극우의 선봉장이 되었다. 반면 83살의 나이로 여전히 건필을 휘두르는 홉스봄은 진보 사관에 충실한 좌파 투사이다.

포퍼는 홉스봄이 기꺼이 수락했을 '역사주의' 에 맹공을 가했고, 홉스봄 역시 포퍼의 '반증주의' 방법을 경험론의 탈선으로 비판했을 것이 확실하다.

예컨대 99마리의 백조가 희더라도 그것은 "모든 백조가 희다" 는 증명이 되지 못하므로 오히려 1마리의 검은 백조를 찾아내 "모든 백조가 희지 않다" 고 기존의 진리를 반증하라는 말씀인데, 포퍼의 이런 주장이 홉스봄한테는 마치 "모든 사람은 죽는다" 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마지막 사람이 죽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따위의 궤변으로 비쳤으리라.

날조된 자본주의의 모순

최근 이 두 사람의 얘기를 같이 들을 기회가 있었다. 포퍼의 책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생각의 나무.2000)와 홉스봄의 책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 (끌리오.2000)를 통해서였다.

두 책이 모두 이탈리아 언론인과의 인터뷰라는 '엉뚱한' 점에서 서로 닮았다. 그러나 양인의 사상적 관점은 백조/흑조 시비만큼이나 차이가 심하다.

먼저 포퍼는 플라톤으로부터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전체주의 계보는 '열린 사회의 적' 이며, 마르크스가 서술한 극단적 형태의 자본주의는 '악마의 꿈' 이 날조한 허구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홉스봄은 공산주의의 목표가 "신앙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교회라는 하드웨어를 구축하려는 것이어서" (홉스봄, 60쪽)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그래도 마르크스주의는 우파의 자본주의 호교론보다 한층 우월한 가치를 지녔다고 반박한다. 이런 세계관의 차이는 역사적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냉소적으로 대하는 포퍼는 소련이 지적으로 빈방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헝가리를 통한 동독 인민의 탈출이란 도화선이 없었다면 "소련은…영원히 또는 적어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을 것" (포퍼, 96쪽)이라고 다소 이색적으로 진단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예정된' 절차로 바라보는 홉스봄 역시 소련 붕괴가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시장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드러낸 당과 국가의 통제력 상실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뒤따라 러시아를 휩쓴 빈곤과 무질서에 대해서도 그는 "이런 재앙이 전적으로 자유 시장 체제 때문이냐고 묻고 싶겠지요□ 나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홉스봄, 101쪽)라고 명료하게 자신의 견해를 정리했다. 포퍼에게 세계화 추세는 자유 시장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홉스봄한테는 자유 시장이 성장률은 높일지 모르나 분배 불평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세계화 강요는 아주 경계할 현상이다.

경제의 세계화보다 정치의 세계화는 한층 더 '위험한 도박' 인데, 민족국가 문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제 정치에서 새로운 패권 질서를 건설하려는 미국의 '세계 경찰' 게임이 성공할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좌파의 몰락이 정치 자체에 대한 무관심을 심화시키며, 이것이 바로 자유 시장의 세계화 설교가 득세하는 토양이라는 홉스봄의 경고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21세기를 전망하면서 보수주의자 포퍼는 인류에게 3차 대전의 위험이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도 소련의 상속자 러시아가 수소 폭탄을 잘못 관리하며, 민족주의가 공산주의의 오류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진보주의자 홉스봄은 강대국간 전쟁이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다만 전쟁인지 내전인지 구분하기 힘든 국지적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소위 'CNN-효과' 로 인해 정부 독점의 전쟁 통제력이 약화되고, 병사들의 전투보다 민간 기업의 전쟁이 한층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원자 폭탄은 미국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였기 때문에 옳지만, 사하로프의 수소 폭탄은 미국에 공격적이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포퍼가 "미국민은 정상인데 자국민은 '정상' 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장점" (포퍼, 94쪽)이라고 외쳤다고 해서 크게 놀랄 것은 없다. 물론 "미국이 정의 구현을 위해서 전쟁에 참전했던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홉스봄, 33쪽)는 홉스봄의 지적도 놀랄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전쟁에는 전쟁으로' 라는 포퍼의 처방과,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지 말라는 홉스봄의 충고 가운데 어떤 선택이 바람직한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정의 구현 위한 참전 없어

"마르크스주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의 압력을 성공적으로 제거하려는" (포퍼, 104쪽) 포퍼의 '한 가지 커다란' 희망 가운데 적어도 절반은 그의 생전에 이뤄졌다.

반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세계적 명사가 유일하게 교황이라는 사실" (홉스봄, 137쪽)에 상심하면서도, 미국의 경제력 우위가 미구에 끝나고 세계화 횡포에 고삐가 잡히리라는 홉스봄의 기대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죽은 포퍼가 산 홉스봄을 이긴 셈인가? 글쎄 '뉴 레프트' 깃발이 세계를 누비던 시절 포퍼의 철학이 '반동 이론' 으로 뭇매 맞은 과거를 돌아본다면, 세계화 찬가에 취해 홉스봄의 역사관에 '시대 착오' 라는 비난의 팔매를 던져서는 안되리라. 역사란 그렇게 돌고 도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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