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혼란 줄이기, 그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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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따르면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이 구절에는 본래 더 깊고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만, 이 문장만 놓고 본다면 노자야말로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내다본 선각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시대야말로 집과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더욱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안방에서 일을 할 수 시대인 것이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 세계 곳곳의 최신 뉴스를 읽음은 물론이요 e메일을 통해 편지를 주고 받고 서로 얼굴을 보며 채팅할 수도 있는 시대다.

뿐만 아니라 안방에서 쇼핑은 물론 영화와 음악 감상도 가능해졌다. 앞으로 원격 의료와 인터넷 교육이 활성화 되면 옛 선인들이 꿈꾸었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세계가 열릴 전망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정보화 열기는 주목할 만하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사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인터넷 사용자는 1천6백만명을 넘어섰다. 정보화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만 해도 3백만명에 다다르고 있다. 이처럼 정보화 인프라 면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앞선 국가로 손꼽힐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가져다 주는 신세계가 장밋빛 꿈으로만 가득한 것일까. 과거 우리가 고속 성장을 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을 낳았듯이, 최근 들어 서서히 급속한 정보화에 따른 역기능과 부정적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모 연예인의 사생활이 담긴 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 크게 사회문제가 된 것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옛 속담처럼 인터넷의 전파 속도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예전에는 비디오 테이프나 CD로 은밀하게 훔쳐보던 것들이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은 정보화 사회가 가져온 대표적인 부작용 중의 하나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해킹이나 사이버 범죄들이 끼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사회적 손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정보화와 사회의 다원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보가치 판단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보를 다루고 선택하는 가치관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예컨대, 급격한 산업사회의 혼란을 통과한 후유증을 미처 수습하기도 전에 정보화라는 거대한 태풍을 만난 격이다.

정보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정보 소외계층에 인터넷은 아직 낯선 문화다. 자유로운 정보 접근 기회를 보장받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은 이미 심각한 격차를 보이고 있고 그런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한 그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정보 격차는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산업사회의 소득 격차 못지않게 사회 정의와 분배 실현의 장애물로 다가설지도 모른다.

정보화가 만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산업사회의 부작용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고소득층과 저소등층,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도시와 농어촌 사이에 괴리를 더 심화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정보화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정보화가 급격하게 전개되는 데 반해 사람들의 의식과 습관은 아직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한 원인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과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다름 아닌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제시하고 싶다. 인터넷 시대에 무슨 전통적인 가치관이냐고 반문하겠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 도우며, 신의를 지키는 것들이야말로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훌륭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보화란 컴퓨터와 인터넷의 도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인터넷은 인간에게 편리한 하나의 도구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의를 지키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가치로 재해석된다면 정보화 사회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인간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듯 정보통신 문화를 창조하고 가꾸어 가야 할 일도 바로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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