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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년간 70억 명이 사랑한 옷에 올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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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28면

명품은 유럽 왕실과 귀족에게 공급되던 귀품 있는 복식과 우아한 장신구가 대중용으로 발전한 것이다. 국제 명품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은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명품이 아닌 실용적 패션도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실례가 있다. 그것도 패션의 본고장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다. 독일 태생 유대인 레비 스트라우스(사진)는 가장 오랜 대중 패션 역사를 자랑하는 ‘블루진’ 바지를 발명했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청바지 발명한 레비 스트라우스

소년 시절 짝사랑 못 잊어 평생 독신
스트라우스는 1829년 독일 바이에른 지방 밤베르크 인근 조그만 마을의 한 다자녀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 주민들은 매년 거듭된 흉년으로 가난에 시달렸다. 행상을 하던 아버지는 어린 스트라우스와 자녀들을 남겨둔 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살길이 막막해진 그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작은아버지와 사촌 몇 명이 먼저 뉴욕으로 이민 갔기 때문이다. 18세가 되던 해인 1847년 스트라우스는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뉴욕으로 갔다. 우선 사는 게 급해 공부는 포기하고 먼저 정착한 작은아버지의 옷가게에서 일을 배웠다. 그런데 고된 일에 비해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당시 미국은 중·서부 개척기였다. 많은 동부인이 서부로 이동했던 ‘골드러시’ 시대였다. 이 ‘금 노다지’ 행렬은 1950~60년대 많이 나온 미국 서부영화의 단골 주제이기도 했다. 스트라우스도 횡재를 꿈꾸며 이 대열에 끼어 서부로 향했다. 막상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그는 크게 실망했다. 금은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다 캐가고 남은 게 별로 없었다. 결국 뉴욕에서 배운 옷 장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1853년 ‘리바이 스트라우스 앤드 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처음엔 조그만 공장에서 천막 천으로 광부들의 작업복을 주로 만들었다.

당시 광산 인부들이 입던 바지는 주머니 재봉선이 자주 터졌다. 금 등 광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다 질긴 바지가 필요했다. 네바다주 카슨시티에서 양복점을 하던 라트비아 태생 유대인 재단사 제이컵 데이비스가 동업을 제의해왔다. 데이비스는 천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징인 구리 리벳을 바지에 박아 넣는 아이디어를 냈다. 스트라우스도 한 가지 발상을 떠올렸다. 당시는 미국 남북전쟁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는 전쟁 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 캘리포니아로 온 남군 패잔병이 입고 있던 파란색 바지를 유심히 보았다. 그는 이 인디고 블루색이 사람들에게 활력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1873년 5월 20일 리벳을 넣은 남청색 바지의 특허가 승인됐다. 140년 패션 역사의 리바이스 블루진 바지가 공식 탄생한 날이다.

19세기 말 본격적인 산업화에 진입한 미국은 스트라우스의 청바지를 위한 좋은 시장을 제공했다. 진 바지는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바지가 조금 무겁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스트라우스는 가벼운 면 소재인 데님으로 옷감을 바꿨다. 데님은 프랑스 남부 도시 님(Nimes)의 특산물이며 고급 면 의류를 만드는 데 많이 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 전선에 참전한 미군들이 진 바지를 즐겨 입었다. 청바지가 미국을 넘어 세계화 상품으로 발전한 계기다. 전통적으로 배타적인 유럽 시장도 청바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1890년 청바지의 특허 시효가 만료되자 다른 제조사들도 다투어 진 바지를 만들었다. 1934년 여성용 청바지가 처음 등장했다. 66년엔 여러 번 반복해 박음질하는 재봉법이 리벳을 대신했다. 70년대 중반엔 미국 유대인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이 명품화된 청바지를 선보였다.

수줍은 성격의 스트라우스는 소년 시절 짝사랑하던 한 독일 여성을 잊지 못해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대신 청바지 생산과 판매에 열정을 바쳤다. 그는 성실함과 신용을 신조로 한 창조적 경영에 앞장서다 190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 회사 경영권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창업자의 경영 신조는 그대로 계승됐다.

청바지는 1950~60년대에 대도약기를 맞았다. 록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대표적인 청바지 전도사였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영화배우 제임스 딘과 명배우 말런 브랜도 그리고 비운의 여배우 메릴린 먼로도 청바지의 충실한 홍보요원이었다. 실용성과 멋을 모두 지닌 청바지는 작업복·평상복·레저용 등으로 용도가 다양화되어 전 세계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복장이 됐다.

세계 인구와 맞먹는 연인원 70억 명이 입었다는 청바지는 자유·평등사상, 계급사회 철폐, 기득권층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 또 신분 과시용 명품이 아닌 대중의 영원한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교육받지 못한 한 유대인 의류상이 만든 바지가 불변의 세계화 상품으로 발전했다.

청바지 전도사, 엘비스 프레슬리
얼마 전부터 우리도 세계화에 매달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엔 근본적인 장애가 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시대별로 힘센 주변 외세에 의존했다. 그러고는 한반도 내에서 자족하며 배타심만 키웠다. 나라 밖으로 나가 무엇을 개척해보겠다는 선의의 모험심이 없었다. 여전히 세계화가 체질적으로 익숙지 못한 이유다. 영어 몰입교육은 기본 전략이 아닌 지엽 전술에 속한다. 다원화된 세계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체계적인 세계화 전략부터 세우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이론이나 학문이든, 인물이든, 상품이든 이것만은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독창적 세계화 상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청바지 외에도 유대인들이 만든 세계화 상품은 무수히 많다. 지적 호기심에 기초한 창의적 교육과 폭넓은 열린 사고를 중시하는 유대인들이 세계화를 선도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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