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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34> 사찰 전각에 깃든 불교 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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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신준봉 기자

벚꽃길이 숨막히는 지리산 쌍계사, 동백꽃의 아름다움이 사무치는 전북 고창 선운사, 매화로 유명한 전남 순천 선암사…. 지천으로 꽃이 피는 계절이다 보니 꽃 좋은 절을 찾는 사람도 부쩍 늘고 있다. 한데 절을 찾는 사람들 중 정작 절 자체에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사찰 전각의 의미, 그 바탕에 깔린 불교 사상을 알아봤다. 뭐든지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법이다.

가끔 절을 찾을 때마다 알쏭달쏭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웅전·극락전·무량수전·미륵전 등 제각각인 전각(殿閣)의 이름은 각각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일주문(一柱門)을 지나면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이 나오는데 이런 문에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 전각의 ‘전’은 무엇이고 ‘각’은 무엇인지. 부처님을 모신 불교 사찰에 토속 신앙을 섬기는 산신각·칠성각 등이 들어와 있는 이유는 뭔지.

 이런 궁금증을 풀려면 한국 불교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사찰은 단순히 승려들이 거주하며 참선 수행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산스크리트어를 받아들여 가람(伽藍), 혹은 불도(佛道)를 닦는 곳이라는 뜻으로 도량(道場)이라고도 부르는 사찰은 실은 방대한 불교사상 체계를 구현해 놓은 공간이다.

부산 범어사의 천왕문에서 불이문에 이르는 길이다. 실제로는 짧고 굽었지만 길고 곧아보이도록 만들어 한국적 미학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관조 스님]

 불교 경전의 분량은 엄청난 데 반해 대다수 신자가 한자를 읽지 못하던 시절,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손쉬운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문자보다는 구체적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질적 대상을 통해서였다. 해서 불탑이나 불상·불화는 물론 이런 것들을 품은 사찰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됐다. 불교의 조형예술품은 적극적인 포교의 수단이면서 일차적인 신앙의 대상이었다(김봉렬,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사찰 건축은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흔히 통불교(通佛敎) 혹은 회통불교(會通佛敎)라고 얘기되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모습도 한국의 사찰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 인도에서 생겨난 불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일본 등으로 전파되며 다양한 종파를 낳았다. 한국 불교는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여러 종파를 통합한 통불교 성격을 갖게 됐다. 임진왜란 등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부처를 한 사찰 안에서 모시는, 중국이나 일본 사찰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한 사찰 안에 수십 개의 전각이 들어서게 된 이유다. 결과적으로 가끔 절을 찾은 후손들은 더 헷갈리게 됐지만. 산신각 등이 절 안에 들어오게 된 것도 불교가 겪었던 역사적 굴곡과 관계 있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한국 사찰이 품고 있는 다양성은 과거 한국 불교가 겪었던 풍상의 흔적인 셈이다.

 이런 사전 지식을 갖고 절 안으로 들어간다.

1 일주문 사찰을 찾으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문이다.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해서 일주문(一柱門)이다. 기둥이 둘인 경우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부산 범어사 일주문처럼 기둥 넷이 한 줄로 늘어선 경우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 줄의 기둥은 번뇌로 흐트러진 세속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일주는 곧 일심(一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 밖은 속계(俗界), 문 안은 진계(眞界), 곧 정토세계다. 문은 단순히 절 경계를 가르는 용도가 아닌 것이다.

2 천왕문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온다. 불법을 지켜주는 사천왕을 모신 건물이다. 사천왕은 불교의 우주관에 등장하는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을 지키는 네 왕이다. 네 왕은 각각 동·서·남·북 네 방향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광목천왕(廣目天王)·증장천왕(增長天王)·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3 불이문  전각을 만나기 전 마지막 통과해야 하는 문이다. 불이문(不二門)은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게 경주 불국사의 불이문인 자하문(紫霞門)이다. 지금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직접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돼 있지만 자하문에 오르는 돌계단의 계단 수 33개는 불교에서 지극히 많은 숫자를 의미한다. 신라의 장인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불교적 세계관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불교의 우주관을 살피고 넘어간다. 우선 허공 속에 원반 모양의 풍륜(風輪)이 떠 있다. 그 위에 그보다 작은 수륜(水輪), 다시 그 위에 보다 작은 금륜(金輪)이 각각 포개져 있다. 금륜 안에는 가장 높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7개의 산이 에워싸고 있다. 이 산들 밖에는 물결이 출렁거리는 바다가 있고 그 위에 네 개의 대륙이 떠 있는데 그중 남쪽에 있는 섬부주(贍部洲)가 인간이 사는 곳이다.

 불가에서는 세상에는 모두 28개의 하늘이 있다고 믿는다. 28천(天)은 다시 욕망이 창궐하는 욕계(欲界) 6천(天), 욕망은 떠났지만 육체는 남아 있는 색계(色界) 18천, 육체마저 초월한 무색계(無色界) 4천으로 나뉜다. 이 숫자들을 합쳐 28천이다.

 사천왕이 버티고 있는 수미산 중턱은 욕계의 1천에 해당하는 사왕천(四王天)이다. 가장 차원 낮은 하늘이다. 번뇌가 없는 무색계까지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수미산 꼭대기에는 한 변의 길이가 8만 유순(약 56만㎞)에 이르는 정사각형 모양의 평평한 공간인 욕계 2천, 즉 도리천(<5FC9>利天)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불교에서 무한히 많은 숫자를 의미하는 33명의 신이 머무른다.

 불국사 자하문의 돌계단은 바로 이 도리천을 건너가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지상에서 벗어나 하늘에 떠 있는 3천(天) 이후의 세상으로 갈 수 있다. 욕계 4천은 미륵보살이 머무르는, 모든 것이 만족된 상태인 도솔천(兜率天)이다. 이곳에서는 인간적 욕망이 약해져 남녀간에 손만 잡아도 성욕이 만족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전체 28천 중 4천에 불과하다. 불교에서 해탈의 어려움은 이런 우주관에도 철저하게 반영돼 있다.

 어쨌든 일주-천왕-불이문은 불국토에 이르는 과정에 있는 관문을 상징한다.

전북 부안 개암사의 대웅전 내부. 화려함을 뽐낸다.

4 대웅전 절 안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전각을 만나게 된다. 전(殿)은 부처와 보살을 모신 곳, 그 나머지를 모신 건물은 각(閣)이라 한다. 대웅전(大雄殿)은 석가모니, 즉 붓다를 법당 한가운데 주불(主佛)로 모신 전각이다.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란 뜻. 주불 양편에서 보좌하는 협시(脇侍)불은 법당마다 차이가 난다.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신 절도 있고, 붓다의 십대 제자인 가섭존자·아난존자를 모신 곳도 있다.

전북 고창 문수사의 문수보살. 위압적이지 않고 친근한 풍모다.

5 대적광전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연화장(蓮華藏) 세계의 교주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불(本尊佛)로 모신다. 불교의 수많은 경전 중 『화엄경』을 으뜸으로 치는 화엄 계통의 사찰에서 본전(本殿)으로 삼는다. 어떤 전각이 본전인지를 알면 그 절이 불교의 수많은 가르침 중 어떤 걸 중시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연화장 세계는 수많은 꽃이 각각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전체적으로 서로 조화되는 화엄의 세계다.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모신다.

6 극락전 극락전(極樂殿)은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다. 아미타불은 원래 임금이었으나 출가한 후 온갖 공덕을 쌓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을 세운 끝에 마침내 부처가 됐다. 그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들이 의지하는 대표적인 부처다.

아미타불의 광명이 백천억 불국토를 비추고 수명도 한량없다 해서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하고, 주불의 이름을 따서 미타전이라고도 한다. 경북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대표적이다.

7 미륵전  미래에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인 미륵불(彌勒佛)을 모신 법당이다.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한다. 전북 김제의 금산사가 대표적이다.

8 원통전  중생의 원을 낱낱이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다. 관세음보살이 모든 곳에 두루두루 원융통(圓融通)하게 나타나 중생의 고뇌를 소멸케 해준다고 해서 원통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주불전이 아니라 부불전(副佛殿)일 경우는 관음전(觀音殿)이라고 부른다.

9 약사전  현세 중생의 모든 재난과 질병을 없애주고 고통에서 구제해주는 부처인 약사(藥師)여래를 모시는 법당이다. 만월보전(滿月寶殿)·유리광전(瑠璃光殿)이라고도 한다.

10 팔상전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여덟 폭의 그림에 나눠 그린 그림을 모신 법당이다. 그래서 팔상전(八相殿)이라 부른다. 영산전(靈山殿)이라고도 부르며 불단 없이 팔상도를 모시는 게 일반적이다. 충북 보은 법주사의 팔상전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석가모니의 제자 중 번뇌를 남김없이 끊어 성자의 반열에 오른 나한을 모시는 나한전(羅漢殿), 불교의 지옥인 명부 세계의 주존인 지장보살을 모시는 지장전(地藏殿), 한 종파를 세운 스님이나 후세에 존경받는 큰 스님을 모신 조사당(祖師堂) 등이 있다.

 동국대의 문명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경전에 나오는 부처의 종류는 1000개나 된다. 그만큼 불교는 담고 있는 진리나 수행 방법 등에 따라 다양한 갈래와 종파로 나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 불교는 조선 세종 때 당시 수십 개의 종파가 선·교 양종으로 통합된 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전쟁 때 공을 세운 선종이 교종을 흡수해 하나로 통합됐다. 이렇게 해서 한국 불교가 통불교적 성격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규모가 큰 사찰의 경우 20∼30개의 전각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문 교수는 “그래도 숫자가 가장 많은 전각은 대웅전·대적광전·아미타전·약사전·미륵전 등”이라고 말했다. 또 “불교에서 불상은 어디까지 방편일 뿐 절대적 신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부처를 모신다는 이유로 불교를 다신교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변함없는 불교의 진리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얘기다.

◆ 참고도서=『불교입문』(조계종 출판사),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컬처그라피)
◆ 도움말=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조계종 포교원 고명석 종무관
◆ 사진=관조(1943~2006)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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