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정치자금법 족쇄 벗고 부활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오자와

‘불사조의 부활’이냐, ‘오자와 시대의 종언’이냐.

 20년 넘게 일본 정치의 ‘킹 메이커’로 군림해 온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9)의 정치 운명이 내일 결정된다. 도쿄지방법원은 26일 오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자와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린다. 판결 결과에 따라 일본 정치판은 요동칠 전망이다.

 혐의는 단순하다. 오자와의 정치자금 관리단체 리쿠잔카이(陸山會)가 오자와로부터 받은 현금 4억 엔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받은 사실, 도쿄시내 택지(3억5200만 엔)를 구입하는 과정을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9년 초 수사 착수 당시 도쿄지검 특수부는 문제가 된 4억 엔의 출처를 뒤지는 데 초점을 뒀다. 공사 수주를 도와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냄새가 난다며 건설사 사장들을 줄줄이 불러 조사했다. 하지만 증거가 안 나오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모든 게 끝난 듯했다.

 하지만 ‘검찰심사회’ 제도가 복병이었다. “비서들의 진술이나 정황상 오자와가 허위 기재에 직접 관여한 게 확실해 보인다”며 강제 기소를 한 것이다. 2009년 5월 새롭게 도입된 이 제도에 따라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는 설령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도 특정 사안에 대해 강제 기소를 할 수 있다. 일각에선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기재 오류에 대해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동정론도 있었지만 여론은 냉정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일제히 ‘오자와 때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2011년 10월 첫 공판 직후 반전이 일어났다. 강제 기소 결정의 절대적 근거가 됐던 검찰의 수사 보고서가 허위로 밝혀진 것이다.

 당시 보고서는 이랬다. “검사로부터 ‘당신(토지 구입 당시 오자와의 비서였던 이시카와 현 의원을 지칭), 야쿠자 부하가 오야붕(두목) 지키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처럼 진술하면 그건 지역 유권자를 배신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자 비서는 무너졌다. 그러고는 ‘실은 오자와 선생에게 (허위 기재 건을) 보고했고, 승낙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달랐다. 비서가 조사 당시 몰래 녹음한 걸 공개한 것이다. 그러자 재판부는 “검찰조서 내용 대부분이 신빙성을 잃었다”며 조서 대부분을 증거에서 제외했다. 반면 오자와는 무죄→당원자격 정지 해제→9월 당 대표 경선 출마의 수순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최후의 봉사를 하고 싶다”며 총리직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오자와는 14선이다. 27세 때 첫 당선됐고 자민당 간사장을 맡은 게 49세였다. ‘황태자’로 불렸다. 후임 총리를 정하기 위해 후보 3명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면접을 볼 정도였다. 이후 탈당과 창당을 거듭해 ‘파괴자’로 불리지만 어찌 됐건 일본 정국 흐름의 핵에는 늘 오자와가 있었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영원한 막후 실세’가 마지막으로 총리의 꿈을 불사를 수 있을지 아니면 정치 생명의 끝을 고하게 될지 재판 결과에 달려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