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와야…' 서울 전셋값 떨어지자 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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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 강남구에 사는 서모(40)씨는 최근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전세보증금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빌라(109㎡)의 전세 만기일이 이달 말로 끝나자 서씨는 경기도 군포시의 한 아파트에 입주하기로 하고 최근 계약까지 마쳤다. 그런데 현재 집주인이 ‘세입자가 들어와야 돈을 줄 수 있다’며 보증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서씨는 “당장 입주 날짜는 다가오는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이사를 가지 말란 말이냐”며 한숨을 쉬었다.

 답답하기는 집주인도 마찬가지다. 서씨가 이사 올 때만 해도 2억5000만원에 달했던 전세보증금이 2억300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2000만원을 낮춰 새로운 세입자를 찾고 있지만 아직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전셋값이 상승할 때 임대보증금을 크게 올렸던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상승세를 보이던 서울 전셋값이 올해 같은 달에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 여파로 전세가 잘 빠지지 않으면서 보증금 문제로 이사를 가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19일 서울시가 지난달 말 부동산 중개업자 3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는 세입자를 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41.8%에 달했다.

 미반환 이유도 다양했다. ‘집주인이 주변 시세보다 보증금을 높게 받으려 하기 때문’이 39.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집주인의 자금 부족(35.1%), 집이 오래돼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서(17%), 현 세입자가 계약 해지를 뒤늦게 통보해서(3%) 순이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은 대부분이 집주인 눈치를 보며 머물렀다. 정작 이사를 간 세입자는 고작 7%에 그쳤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 임대차상황실에 접수된 보증금 반환 분쟁 상담 건수도 2010년 2459건에서 지난해 2781건으로 늘었다. 부동산뱅크 컨텐츠팀 장재현 팀장은 “지난해 서울 지역 아파트 전셋값이 경기도 지역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을 만큼 폭등했다”며 “이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멀리 동탄·군포까지 이동하면서 최근 서울 시내에는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의 92%는 이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권과 비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전세금대출은 집주인이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하거나 세입자가 직접 대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은 대출을 꺼리는 데다 세입자도 집주인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전세금대출은 흔치 않다.

 여장권 서울시 주택정책과장은 “서울시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하고 낮은 이율로 빌려주는 보증금 대출제도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는 연내에 전세보증금 상담센터도 운영할 방침이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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