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PC시장… 소비자들 신제품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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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는 죽었다."

지난 8월 IBM의 루이스 거스너 최고경영자겸 회장이 이렇게 말했을 때 업계 반응은 '설마' 였다.

3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들어가고 있다. PC 메이커들의 실적은 예상치를 훨씬 밑돌고 주가도 한결같이 하락세다. PC 출하량 증가세도 예년에 비하면 형편없다.

◇ 위기의 PC시장=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 데이터 퀘스트에 따르면 올 3분기 미국의 PC 출하량은 전년동기 대비 12%가 늘었다.

그러나 이는 97년의 20%, 98년의 18%에 비하면 증가세가 크게 둔화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PC 출하량은 내년에 1억5천만대, 2002년에는 1억8천만대로 예상되지만 20% 이상씩 증가하던 예년에 비하면 증가세가 더디다.

애플컴퓨터는 6일 올 4분기 영업실적이 2억2천5백만~2억5천만달러의 적자로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사가 분기별 영업에서 순손실을 기록하기는 3년 만에 처음이다. 애플사 주가는 이날 15.8%나 하락했다.

다른 PC메이커도 사정은 비슷해 인텔은 11.98%, 휴렛 패커드는 8.04%, IBM은 6.1%씩 주가가 하락했다.

이에 앞서 미국 4위의 PC업체인 게이트웨이도 올 4분기 매출 및 순이익이 추수감사절 연휴의 판매 부진으로 월가의 전망치에 못미칠 것이라고 지난주 밝힌 바 있다.

델컴퓨터도 3분기 순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2배 늘었지만 앞으로 매출 성장세가 크게 둔화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휴렛 패커드 역시 4분기 수익이 당초 기대의 2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현재 컴퓨터 및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2개월 전에 비해 30~40% 폭락한 상태다.

◇ 성장 둔화 이유〓PC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인터넷 붐을 타고 웬만한 선진국 가정은 모두 PC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인구 대비 PC댓수가 55.6%에 이르고, 캐나다는 52.9%, 영국은 42.4%, 일본은 37.4%다.

인텔의 신형 칩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시스템 신버전이 판매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것도 PC 업계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출시된 인텔의 펜티엄4 칩은 1.5GHz의 빠른 처리속도에도 불구하고 정작 판매가 신통치 않다.

MS의 기업용 윈도2000도 지금까지 1천만카피가 팔렸을 뿐 더이상 늘어날 것 같지 않다. 윈도95가 1년간 4천6백만카피가 팔린 데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은 "PC 사용자들의 관심이 구동능력이 아닌 인터넷 접속속도로 옮겨간 지 오래" 라고 말했다.

PC를 새것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면서 광대역 등을 통한 초고속 접속을 꾀한다는 것이다.

주요 고객인 기업들이 PC의 업그레이드를 꺼리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시장조사업체인 기가 인포메이션의 롭 엔델 연구원은 "버전업된 PC를 도입할 경우 일정기간 생산성 저하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성능이 더 좋은 PC가 나와도 바꾸려들지 않는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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