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여자는 왜’] 명품족 여성을 보는 중도우파 남성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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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명동 나갔는데 정말 이초백이 잔뜩….” 몇 년 전 여직원끼리 하는 얘기를 듣고 첨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이초백’이 흔한 명품을 뜻하는 ‘2초백’인 것도 뒤늦게 알았다. 국내 명품시장이 화끈하다고 한다. 첨엔 뭐가 명품 브랜드인지 알아보지도 못하던 나조차 이젠 시내에서 ‘2초백’과 ‘3초백’을 척척 찾아낼 수 있게 됐다. 남성들 일부는 명품을 찾는 여성들을 향해 ‘된장녀’니 하면서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을 터이다.

 이를테면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저금한 돈으로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배의 경우는 어떤가. 옛날 같으면 돈 모아서 얼른 결혼이나 할 것이지 하고 힐난을 했겠지만, 요샌 부러운 마음으로 박수를 쳐준다. 마찬가지로 자기 돈으로 명품을 사서 스스로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면 그 또한 뭐라 할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명품이란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그림이 하나 있다. 지난해 여름 오르세미술관전에 갔을 때 윈슬로 호머의 ‘여름밤’이란 유화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림을 떼어오고 싶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사온 복제화를 펴보는데, 그 여름 저녁을 생각하면 애틋하고도 신선한 기운이 스며드는 기분이다.

 잘 납득이 가진 않지만 아마도 여자에게 명품이란 그처럼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마법의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마치 배낭여행을 가서 이국의 풍경을 마음에 담아오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감을 준다면 그게 명품이라 해서 딱히 힐난할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소비문화에 대해서 다소 삐딱한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나 슬라보예 지젝은 다르게 말하겠지만,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고.

 그건 그렇고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다녀왔기에 후배의 배낭여행이 생에 더 큰 의미를 준 것처럼 여자들의 명품 마련에도 자신의 수고가 깃들어야 더 근사하지 않을까. 이게 명품 현상을 대하는, 남자들의 중도우파적 시각이다. 이해 못할 여자들의 문화에 대해선 중도파의 입장이 언제나 속은 편하다.

조현 소설가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저자 xenobla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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