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무심코 남긴 흔적 ‘디지털 비수’로 돌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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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4·11 총선의 화두 중 하나는 바로 ‘디지털 흔적(Digital Footprint)’이었다. 일부 후보는 ‘설화(舌禍)’보다 예전에 남긴 인터넷 말과 글로 인한 ‘디지털화(禍)’로 큰 곤욕을 치렀다. 8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한 막말로 뭇매를 맞은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 김용민(38·서울 노원갑)씨가 대표적이다. 새누리당 하태경(44·부산 해운대) 당선인은 2005년 대학 동문 커뮤니티에 남긴 “국제적으로 독도는 분쟁지역으로 공인되어 있다”는 글로 인해 야당으로부터 사퇴 압력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국회의원이 되려면 디지털 흔적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디지털 흔적이 개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에 남긴 글은 고스란히 저장돼 비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가수 박재범씨는 2004년 개인 홈페이지에 남긴 “한국이 역겹다”는 글이 문제가 돼 2009년 가수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MC몽의 병역기피 의혹도 2005년 포털 게시판에 발치로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본 게 알려지면서 커졌다.

 이젠 일반인도 예외가 아니다. 경남지역 한 경찰서 소속 황모(27) 경찰관은 최근 대기발령 상태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피해 학생을 욕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을 미니홈피에 남겼던 전력 때문이다. 황씨가 경찰관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네티즌은 황씨를 거세게 비난했고 황씨는 사과 글까지 남겨야 했다.

 이 같은 디지털 흔적은 인터넷의 저장능력 때문에 가능하다. 작성자가 기억을 못할 정도로 시간이 흘러도 그 내용은 인터넷 서버에 남는다. 이를 검색하면 다른 사람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검색엔진에 이름만 입력해도 웬만한 정보는 검색이 가능하다. 기자가 실제로 이름을 넣어 검색해보니 생년월일은 물론 출신학교, 심지어 유명 축구게임 사이트 이용 내역까지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선 고용주들이 취업 지원자들의 개인정보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페이스북 계정정보를 요구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직원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대행업체도 생겨났다. 일부 국내 기업도 경력 임직원을 채용할 때 평판도 조사와 함께 디지털 흔적 검색으로 평가를 한다고 한다.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이상진 교수는 “말은 뱉으면 사라지고, 글도 출판이 안 되면 잊혀지지만 인터넷은 다르다”며 “적대적 관계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검색한 결과로 한 개인에게 ‘디지털 주홍글씨’를 씌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과 하태경 당선자의 ‘독도 논란’은 상대 진영인 새누리당과 통합진보당이 각각 찾아낸 것이다.

 최근엔 이런 디지털 흔적을 세탁해주는 ‘디시 헌터’ ‘트윗와이프’란 프로그램마저 등장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원문을 지워도 ‘퍼가기’로 복제된 정보를 완전히 지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태연 중앙대(심리학) 교수는 “매체 발달로 이젠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내가 함께 살아가는 셈”이라며 “개인 스스로가 온라인 공간에서 어떻게 활동할지 명확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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