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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와 정유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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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복
워싱턴특파원

높이뛰기나 멀리뛰기를 시도할 때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한 경우 성공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자신도 모르게 심리적 한계를 긋고, 그 한계가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포츠 선수들은 도전 과제를 앞에 두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자기 주문을 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관건인 것이다.

 워싱턴에 특파원으로 부임해 인터뷰한 여러 인물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고(故) 강영우 박사와 정유선 교수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장애를 극복하고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지난 2월 소천(召天)한 강 박사는 시각장애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 정부 고위직(백악관 차관보)까지 지냈다. 장애가 없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정유선 조지 메이슨대 교수도 뇌성마비 장애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지난주 대학의 최우수 지도상까지 받아 화제가 됐다.

 끈질긴 노력과 성실함도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덕목이다. 고 강영우 박사는 늘 배우고 나누는 삶으로 주변의 귀감이 됐다. 지난해 말 기자가 췌장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책을 쓰는 데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 있었다. 후인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자신의 경험을 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보조공학’을 가르치는 정 교수 역시 주 1회 2시간30분짜리 수업을 위해 일주일을 온전히 바친다. 언어장애가 심한 그는 컴퓨터 음성장치의 도움을 받아 강의를 하는데, 혹 실수라도 있을까 봐 수업 전에 항상 리허설을 한다. 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지난 8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세상을 관조하는 이들의 철학에 숙연해진다. 인생의 교훈을 묻는 질문에 대해 고 강 박사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다음에 더 좋은 일이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살았다”고 답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 아들이 세계적인 안과의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유선 교수는 “인생엔 직선도로만 있는 게 아니다. 목표를 잃지 않으면 그곳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들은 어지간한 사람들이 쉽게 포기할 만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고 강 박사는 열네 살 때 갑작스러운 실명 후 홀어머니마저 잃고 소년 가장이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정 교수는 언어장애로 영어발음을 할 수 없어 심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둘 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어려움을 이겨냈고, 그 비결을 “나를 믿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말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당당히 겨뤄 일가를 이룬 이들을 보면 과연 장애란 무엇인가 돌아보게 된다. 결국 장애란 스스로 심리적 한계를 긋고 자신과의 싸움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