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바로잡기]1.잔디구장 태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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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코리아-저팬 월드컵'. 앞으로 1년 6개월 뒤면 올림픽과 함께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행사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경기가 열리는 전국 주요도시에서는 경기장을 건설과 부대시설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에 비해 시기적으로 늦기는 하지만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 국민들의 우려를 사고 있는 부분은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펼쳐 보일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이다.

네덜란드 출신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축구 관계자나 최근 한국축구팀의 경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국민들은 '월드컵 16강 진출'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다.

자국에서 경기를 펼치고, 시드를 배정받는 잇점에도 불구하고 예선통과를 자신하지 못하는 슬픈 현실은 세계수준에 한참 뒤쳐진 대표팀의 실력때문이다.

얼마전 일본대표팀 '트루시에'감독은 언론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까지 넘본다는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사실 일본은 16강 진출은 무난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축구 추락원인은 딱히 한가지로 꼬집을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가 아우러진 '합병증'이다.

하지만 축구대표팀 실력 저하를 부른 근저(根低)의 최대요인은 잔디시설을 갖춘 구장 부족이다.

얼마 전 수도권 근교에 50억원을 들여 6곳의 잔디구장을 갖춘 연습장을 짓기로 한 계획이 정부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삭감되고 말았다.

월드컵을 개최할 나라에서 최소한 갖춰야할 기초적인 인프라에 해당되는 잔디연습장 짓는 것도 이다지 어렵다면 장차 우리대표팀은 태국,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팀과의 경기에서도 고전하지 않을까 싶다. 애석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지금도 우리 어린선수들은 전국대회 4강 이전에는 잔디구장을 밟아보기 힘들다.맨땅구장에서 오랜 시간 연습하고 경기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우선,선수생명을 단축시킨다. 딱딱한 맨땅에서 오랜 시간 익숙해진 선수들의 근육은 겉보기에는 우람하지만 유연성이 떨어지고, 피로감이 빨리 온다. 경직된 근육은 잦은 부상을 부르고, 근지구력을 저하시킨다.

우리 선수들이 후반 말미 근육경련을 자구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적으로 30대를 넘어서면 체력의 한계를 느껴 그라운드를 떠나게 만든다.

잔디구장과 맨땅구장은 실제 경기를 치르다 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공의 탄성이나 구르는 속도가 다른다. 축구화에 닿는 공 면적은 잔디구장이 더 넓다. 체력소모 정도는 잔디구장이 더하다.

이런 미묘한 차이가 경기에서는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선수들이 트리핑이 거칠고, 드리블이 미숙하고, 슈팅에서 유난히 공중에 날리는 빈도가 잦은 이유 중에 하나다.

잔디구장 건립이 예산 때문에 어렵다면 잔디시설을 갖춘 연습장 이라도 전국적으로 많이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장래에 축구선수 꿈꾸는 어린선수들에게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익힐 수 있게 해야 한다.

잔디구장은 선수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축구를 즐기는 일반인에게도 시설을 개방해 국민들이 보다 질 좋은 여가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잔디구장 건립안은 이론(異論)이 필요없다. 그리고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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