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인터넷 '욕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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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강도 찜쪄서 안주 삼고, 화냥년 경수 받아 술빚어 먹고, 피똥 싸고 죽을 남원사또 변학도와 사돈해서 천하잡놈 변강쇠 같은 손주 볼놈. " 민학회 광주지부에서 1996년 연 전국 욕쟁이대회에서 으뜸상을 받았던 욕이다.

''정감 있는 욕을 살려 세상과 삶을 윤택하게 만들자'' 며 전국 욕쟁이들을 불러모아 연 대회로 욕의 긍정적인 기능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고 많은 귀동냥으로 입만 벙긋하면 욕설이 나오는 아줌마.아주머니들이 있게 마련이고 동네 사람들은 그 주위에 몰리게 된다. 소문도 나누고 평가와 정도 나누기 위해서다. 그 때의 욕은 남을 공격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이야기 거리를 실감나게 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대화 가운데 가장 즐거운 것이 남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서로 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을 화제로 올린다면 더욱 즐거워진다.

그래 우리는 곧잘 누구누구를 술자리에서 안주감으로 올려 오징어 씹듯 ''씹기'' 까지 하지 않는가. 좋은 점에서부터 나쁜 점까지 질근질근 씹으면서 술좌석의 일체감도 확인하고 또 씹히는 사람의 삶까지도 고루 나누며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욕이 사랑'' 이란 말도 있다. 아끼는 사람을 욕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것으로 사랑의 표시라는 말이다.

그런 시원시원하면서도 정감있는 욕을 듣고 싶어 ''욕쟁이 영감'' 으로 통하는 박동진 명창을 찾고 또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찾는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대형작가 김주영.이문구.윤흥길.조정래씨 등도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자주 욕을 쓰게 한다. 그래 그 인물들의 성격이 선명하게 떠오르게 하며 독자들에게 죄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욕이 상대방을 해하려는 의도를 띠면 문자 그대로 욕이 된다. 남을 미워하거나 저주하거나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 사전적 의미의 욕이다.

''욕은 욕으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 는 속담대로 욕으로 되갚음받을 수밖에 없는 험담이 욕인 것이다. 그런 험담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국회는 그야말로 8도 욕쟁이 경연장을 방불케 하며 인터넷은 ''욕바다'' 가 돼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여기에 자신이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욕설을 퍼부은 탤런트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며 끼리끼리를 정으로 이어주던 욕을 욕보이는 험담에는 어떤 욕이 약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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