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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넘어 공간 이동으로…‘모빌리티 컴퍼니’ 지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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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호 24면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판매의 도요타(豊田), 기술의 혼다(本田)’라는 말을 흔히 한다. 판매는 도요타의 절반 정도인 혼다가 신기술 개발에서 도요타보다 역동적이라는 이야기다. 혼다가 신기술로 무장한 신차를 앞세워 시장을 키우면 도요타는 비슷한 신차를 내놓고 판매력을 앞세워 시장을 빼앗곤 했다. 덩치 큰 마쓰시타가 소니의 신제품을 베낀다는 비아냥 투의 ‘마네시타(마네는 베낀다는 뜻의 일본말)’와 비슷한 맥락이다. 혼다는 덩치 면에서 1등 기업은 아니지만 기술만큼은 선도 기업이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현대·기아자동차(2011년 660만 대, 세계 5위)에 뒤지는 6위권이지만 수익성이 뛰어나다. 2011 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에 8조936억 엔(약 113조원) 매출에 5341억 엔(약 7조원)의 순이익을 냈다.

김태진 기자의 Car Talk 브랜드 이야기 ③ 혼다

‘꿈에의 도전’이란 비즈니스 유전자를 만들어 낸 혼다 소이치로.

왕성한 기술개발의 원동력은 빠른 의사결정이다. 세계 130개국에서 18만 명의 종업원을 뒀지만 벤처업체처럼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유지한다. 소통을 막는 대기업 관료화를 경계한다. 신기술은 혼다 경쟁력의 원천이다. 창립 60년을 넘겼지만 창업자의 기술 중시 철학이 곳곳에 살아 숨쉰다. 회사 이름만 해도 그렇다. 해외에 나가면 ‘Honda Motor Co.’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창업 때 간판 그대로 ‘혼다기켄코교(本田技硏工業)’다. 기술 연구로 먹고사는 기업이란 뜻이다.

혼다는 일본 기업치곤 유연하다. 기자가 아는 혼다 중역은 1960년대 입사 면접 때 ‘UFO(미확인 비행 물체)를 만들겠다’는 엉뚱한 포부를 밝히고도 합격했다. 이 회사는 2000년대 들어 자동차라는 개념을 넘어선 ‘모빌리티 컴퍼니(Mobilty company)’를 선언했다. 인간의 공간 이동과 관련된 편의라면 모두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 UFO는 만들지 못했지만 직립보행 로봇 ‘아시모’를 세계 처음 만들었다. 자체 기술로 제트기까지 개발할 정도다. 아시모는 지루한 단순 노동이나 위험한 작업을 대체하고자 한다. 가정에서 장애인이나 노인을 돌보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것이 터지면 사람 대신 작업하는 것이다.

자동차는 비싸지 않은 중소형 대중차만 만든다. 잘 달리는 튼튼한 차를 싸게 만들어 널리 보급한다는 창업 철학에서 비롯됐다. 경차부터 중형 세단, 미니밴ㆍ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20여 종의 모델 모두 전륜구동이다. 후륜구동은 뒷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구동축(프로펠러 샤프트)이 있어 상대적으로 원가가 많이 든다. 3.5L가 넘는 대형 엔진은 무거워 전륜구동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중차에는 사치라며 개발은 엄두도 내지 않는다. 혼다를 ‘전륜구동의 교과서’라고 하는 이유다.

기자는 ‘생애 첫 번째 자가용’이나 가정용 승용차를 추천하라고 하면 혼다를 강추한다. 기능과 가격을 대비해 보면 제품 가치가 탁월하다. 잔 고장이 없고 실내공간 쓰임새가 좋다. 핸들링과 주행성능은 대중차 중 으뜸이다. 장점은 곧 단점이 되기도 한다. 기능과 가치에 치중하다 보면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소재 같은 감성에서 뒤진다. ‘혼다의 위기’라는 지적이 근래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요즘 국내에서 고졸 취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혼다의 학력 차별 철폐가 눈길을 끈다. 대학원 졸업이든 고졸이든 공장에서는 같은 임금체계에서 시작한다. 2000년 초 일본 최고 명문 도쿄대 출신으로 기획실에서 일하던 간부가 ‘현장이 좋다’며 스즈카 공장의 조립라인 작업자를 자청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흉내 내기 힘든 혼다의 유별난 점들을 혼다이즘(Hondaism)이라고 부른다. 뿌리는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1906∼91)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벤츠·포르셰·포드·도요타와 함께 창업자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는 경우며, 창업정신이 그 이름을 통해 제대로 계승된 경우다. 소이치로는 작고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매년 일본 언론이 뽑는 역대 ‘존경받는 기업 경영자’ 조사에서 파나소닉(옛 마쓰시타전기)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와 함께 1, 2위를 다툰다. 소이치로는 실패를 장려할 만큼 패기를 중시했다. 실패 장려금을 둘 정도로 혼다의 기업문화는 도전지향적이다. 그 덕분에 ‘세계 최초’를 양산했다. 소이치로는 “실수가 없는 사람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혼다에 필요치 않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구멍가게로 시작한 혼다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데는 소이치로라는 장인뿐 아니라 관리통인 후지사와 다케오 부사장이 있었다. ‘황금 콤비’ 소리를 들었다. 소이치로는 1950년대 자동차 사업을 준비하면서 회사를 키울 경영자가 필요했다. 당시 일본 최고 자동차 회사인 GM재팬의 관리부장이던 후지사와를 만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 달라”며 삼고초려(三顧草廬)했다. 이후 소이치로는 엔진 개발에만 매달리고 재무ㆍ인사는 후지사와에게 일임했다. 지금도 혼다는 연구소 출신이 사장을 맡아 신차 개발과 미래 전략을 맡고, 부사장이 관리를 도맡아 한다. 정준명 김앤장 고문(전 일본삼성 사장)은 “일본 기업 가운데 기술과 관리를 잘 나눠 성공한 사례로 혼다와 파나소닉이 대표적”이라며 “특히 혼다는 독특한 승계 구조를 통해 경쟁력의 발판을 만들고 지속 성장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혼다의 출발은 오토바이였다. 1948년 군용 대형 무전기에 달린 소형 엔진을 개조해 자전거에 보조 엔진을 단 오토바이를 생산하면서 자동차의 꿈을 키운다. 1952년, 자본금이 고작 600만 엔이던 시절에 자동차 사업을 위해 무려 4억5000만 엔짜리 정밀기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경영사정이 말도 못하게 어렵던 시절에 독자 기술로 위기를 돌파하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이는 60년대 혼다의 전설로 남은 고회전 경량 스포츠카 S360과 S500의 탄생으로 결실을 본다.

70년대 들어 세계 자동차 업체가 제1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고생할 때 혼다는 빛을 발한다. 특히 미국에서 머스키법을 시행해 배기가스 배출을 엄격히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 72년 저공해 CVCC 엔진을 개발해 세계 처음 이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 자동차를 출시했다. 그 모델이 베스트셀러 차량이 된 준중형 시빅이다. 혼다는 즉각 이 기술을 무료로 공개했다.

한국 시장에서 혼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2008년 간판 차종인 어코드와 CR-V를 내세워 BMW를 누르고 단숨에 수입차 1위에 올랐지만 엔고 쓰나미에 무너졌다. 올해는 상황이 달라질지 모른다. 엔고도 주춤하고 신기술을 적용한 신차가 속속 상륙한다. ‘세계인의 중형차’라는 어코드의 9세대 모델이 연말께 모습을 드러낸다. 혼다는 현대의 경쟁 차종 쏘나타보다 연비와 성능 면에서 우위라고 벌써부터 입소문을 낸다. 가장 혼다다운 신차가 될 것이라는 자랑이다. 눈길 끄는 디자인으로 확 바꾼 뒤 승승장구한 쏘나타와 기본에 충실한 어코드의 한판 대결이 펼쳐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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