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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균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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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정진홍
논설위원

# 하버드대 학생들에게 행복학 강의를 통해 경쟁보다 행복을 선택하도록 해서 화제가 됐던 긍정심리학자 벤 탈 샤하르에게는 이런 경험이 있었다. 유대인 출신인 그는 열여섯 살에 이스라엘 전국 스쿼시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그때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우승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은 며칠 가지 못해 바닥이 드러났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상대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으론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남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멋지게… 하는 상대적 경쟁의 강박감이야말로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첩경이며 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고 옥죄는 형틀인 셈이다.

 # 아울러 채우려고만 하면 인생은 영원히 블랙홀이다. 차라리 밑 빠진 독에는 쉬지 않고 재빠르게 물을 쏟아부으면 어느 정도 독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랙홀은 아예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퍼부어도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자고로 자신의 재물창고를 가득 채우고 싶은 사람의 욕심은 끝도 한도 없다. 가득 채우려고만 하면 항상 모자라고 도리어 궁핍하다. 아니 채우면 채울수록 모자란다는 생각이 더 커진다. 재물만이 아니다. 삶도 그렇다. 그 풍요 속의 결핍이 인생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면 삶은 불행해진다. 하지만 과감히 버리고 내려놓으면 거짓말처럼 채워진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지 않던가. 마찬가지의 원리다. 이렇게 보면 채움은 불행이고 비움은 행복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리 생각해도 행동으로는 그 반대로 사는 것이 우리들의 숨길 수 없는 모습 아닌가?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욕심을 먹고사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많이 먹어 속을 꽉 채우면 당장의 식욕은 해소될지언정 몸은 비대해지고 비만해지며 마음은 우울해지고 삶은 활력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꾸역꾸역 내 몸으로 밀어넣지 않는가. 물론 안 먹고 살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균형이다.

 # 지난 월요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제1회의장에서는 ‘유엔행복회의’가 열렸다. 세계 각국의 대표와 학자들, 특히 노벨상 수상자만 다섯 명이 참석했다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날 눈길을 끈 것은 유엔행복회의를 주재한 나라가 강대국도, 선진국도 아닌 부탄이었다는 사실이다. 부탄은 1인당 GDP(Gross Domestic Product·국내총생산)가 우리의 10분의 1 수준인 2020달러에 불과한 히말라야 산중의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1972년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가 4대 국왕에 오르면서 “행복을 국가지상목표로 삼자”고 선언한 이래 GDP가 아닌 GNH(Gross National Happiness·국내총행복)가 국정 및 국가성장의 기본지표가 된 아주 독특한 나라다.

 # 부탄 사람들의 행복지수와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가 세계 최고라는 얘기가 종종 들려올 때마다 “정말 그들은 행복할까?” 하는 생각과 의문이 늘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탄에 가서 산다고 모두 다 행복감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며칠 머물다 심심해서 기어나올 가능성이 훨씬 많을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시끄럽고 역동적이어야 살맛을 느끼고, 제아무리 복잡다단해도 오히려 거기서 살아있음을 재확인하는 아주 독특한 유전자를 집단적으로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심심한 것일 게다. 선거운동이 막바지를 치닫고 있는 요즈음 세간에서는 이런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선거가 예전처럼 재미가 없어. … 좀 심심해.”

 # 선거가 심심하든 말든 이번 총선 결과에 국민들이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누군 이기고 누구는 질 테니 모두가 행복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터이지만 그래도 ‘절묘한 균형’이란 것이 있지 않겠나. 어쩌면 모든 행복은 그 절묘한 균형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이번 선거에서 그 절묘한 균형을 기대해 본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