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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女 살해범, 문부수고 들오는 순간 112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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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일 경기도 수원 지동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토막 살인사건 용의자 중국 동포 우모씨가 살고 있는 다가구주택 대문. 우씨 집은 대문에서 7m가량 안쪽에 있다. 피해자 A씨는 경찰 신고 전화에서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 못골놀이터 가는 길쯤”이라고 자신의 위치를 밝혔다. 우씨의 집은 지동초등학교 후문(빨간 점선)에서 약 60m 떨어져 있다. 경찰은 30여 개 빈집과 공터 위주로 수사를 벌였으나 찾지 못했다. [수원=김도훈 기자]

“저 지금 성폭행 당하고 있거든요.”

 1일 밤 28세 여성 A씨는 경기경찰청 112센터에 성폭행 피해를 신고하며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절규했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A씨는 범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문을 잠그고 전화를 걸었다. 이를 알아챈 범인은 문을 부수고 들어와 A씨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토막 난 시신은 13시간 만에 발견됐다.

 6일 기자가 찾은 범행 장소는 수원시 지동초등학교에서 60m쯤 떨어진 도로변 건물 1층 구석에 있는 쪽방이었다. 재개발이 예정돼 있는 지역이어서 쪽방 안은 낡고 허물어져 있었다. 방세가 싼 쪽방과 오래된 가옥이 많아 중국 동포를 비롯해 일용직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닷새 전 중국 동포 우모(42)씨는 이곳을 지나던 A씨를 자신의 쪽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범행 장소 근처에 사는 60대 남성은 “밤 10시면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아 거리에 인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여보세요. 주소 다시 한 번만 알려 주세요.”

 범인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순간 112신고센터 근무자가 A씨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60초간 통화하는 동안 위치를 확인하는 같은 질문이 세 번이나 계속됐다.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60초는 짧은 시간이 아니다. A씨는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 못골놀이터 가는 길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동초등학교와 몇m 거리인가” “주변에 간판과 다른 건물은 없나” 등 범위를 좁히는 질문은 없었다. 112 근무자는 “누가 그러느냐(범인이 누구냐)” “문은 어떻게 하고 들어갔어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긴박한 1분간의 대화에서 A씨는 ‘못골놀이터’와 ‘지동초등학교’를 반복했다. 두 장소 사이의 거리는 1㎞였다. 11차례의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는 동안 경찰은 핵심을 짚지 못했다.

 112센터는 신고자의 위치를 ‘못골놀이터 부근’으로 추정했다. A씨가 지동초교보다 못골놀이터를 더 많이 언급했다는 이유에서다. 112신고 처리표에도 신고 장소를 ‘못골놀이터’라고 기록했다. 범행 장소와 못골놀이터는 900여m나 떨어져 있다. 결정적 힌트는 A씨가 언급한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란 부분이었다. 지동초교와 가깝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 부분은 3차에 걸친 112 출동지령에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범행 현장과는 엉뚱한 곳을 위주로 헤매고 다녔다.

 출동 장소를 최대한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112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통합 112 신고 전화 대응 매뉴얼’에도 ‘위급상황 추정 시 출동할 장소 신속 파악이 범인 검거의 지름길’이라고 명시돼 있다. 김춘식 경기경찰청 형사과장은 “112센터에서 못골놀이터 주변으로 인식하고 지령을 내려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통화가 끊기자 112센터는 인근 파출소에서 순찰차 2대를 출동시켰다. 동시에 수원중부경찰서도 형사기동대 1개 팀(5명)을 현장에 급파했다. 날이 밝기 전까지 순찰차 5대와 형사기동대 3개 팀(15명)이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경찰 탐문은 허점투성이였다. 112센터가 최초 지령에서 지목한 못골놀이터를 중심으로 빈집과 공터, 학교 운동장, 놀이터, 골목길에 경찰력이 집중됐다. “강간범이 피해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인적이 드문 곳을 우선 탐문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탐문 방식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골목이나 불 켜진 집 대문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 보는 식이었다. 처음부터 35명을 동원했다는 것도 거짓말로 드러났다. 본격적인 가택 방문이 이뤄진 건 날이 밝아 형사들이 대거 동원된 뒤였기 때문이다. 범행 장소 맞은편에 사는 30대 여성은 “아침에 살인사건이 났다고 해서 알았지 전날 밤에는 경찰이 왔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주민을 상대로 탐문조사도 이뤄졌다”고 밝혔다. 경기경찰청은 누구 말이 맞는지 감찰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원 중부서장·형사과장 직위해제=관할경찰서 형사과장은 신고 접수 두 시간 후에야 보고를 받았다. 그전에 출동한 형사팀은 팀장의 지휘로, 순찰차들은 소속 지구대·파출소와 112센터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지휘계통이 일원화되지 않은 것이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원인이다. 서천호 경기경찰청장은 6일 “경찰의 미흡한 대응으로 귀중한 생명을 지키지 못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지휘 책임자였던 김평재 수원 중부서장과 조남권 형사과장을 직위해제했다.

수원=전익진·유길용 기자

경찰의 허술한 대응

▶우왕좌왕했던 112센터

●신고 접수

“못골놀이터 전 집” “초등학교 좀 지나 놀이터 가는 길”

‘못골놀이터’ 강조 상황 전파. 초등학교 부근 생략

●불필요 질문 시간 낭비 “아는 사람?” “문은 어떻게?”

●주변 지형 파악 실패 놀이터·초등학교와 거리 미확인

▶헛짚은 탐문작전

●지동초교 운동장 수색하고도 인근 범행 장소 지나쳐

●범행 장소와 1㎞ 떨어진 놀이터 주변 위주로 수색

●30여 개 빈집 위주로 수색

●밤엔 골목과 주택 문 앞에서 싸움 소리 유무만 확인

●주민 상대 탐문, 날 밝은 뒤 본격화

▶시간대별 경찰 조치

●오후 10시50분58초

112 신고 접수 “못골놀이터 전. 성폭행당한다”

●오후 10시51분07초

코드원 분류. 1차 출동 지령(파출소 순찰차 61호 2명)

●오후 10시51분18초

2차 출동 지령( 순찰차 62호 2명, 형사기동대 5명)

●오후 10시52분쯤

긴급공청 직후 연락 두절(전화 연결된 상태)

●오후 10시53분11초

3차 출동 지령(장안문지구대 순찰차 1대 2명)

●오후 10시53분27초

61호, 62호, 못골놀이터 주변부터 수색 시작

●오후 10시56분쯤 통화 단절(이후 연락 불통)

●다음 날 오전 2시32분

형사기동대 2개 팀(10명)·순찰차 2대(4명) 추가 배치

●오전 6시50분 형사기동대 4개 팀(20명) 현장 도착

●오전 11시30분쯤

사건 장소 옆집 시민 제보 접수 “옆집서 싸우는 소리”

●오전 11시50분쯤

사건 현장 급습 및 범인 검거

112센터, 신고자와 문답 11회 하고도 결정적 힌트 놓쳐 #수원 성폭행 신고 13시간 만에 주검으로 … 밤새 헛바퀴 돈 경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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