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감각이 잘 뜨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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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승전 1국> ○·천야오예 9단 ●·원성진 9단

제4보(37~47)=흑▲와 같은 수를 허용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천야오예 9단은 그건 ‘기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흑▲로 세력이 생겼지만 백△의 낙하산이 제격이어서 하등 우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흑▲ 같은 수는 절대 당할 수 없다며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천야오예처럼 그까짓 게 대수냐고 흔쾌히 당해주는 사람도 있다. 한 판의 바둑도 인생살이처럼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백△에 대해선 일단 37로 미는 게 맞다. 그 다음은 ‘참고도’ 흑1로 두고 백2로 달아날 때 3으로 넘어 두면 보통이다. 하지만 원성진 9단은 39 쪽으로 간다. 실전과 ‘참고도’는 어느 쪽이 나을까. 그야말로 뜬 구름 잡기이고,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 있는지는 귀신도 모른다. “이런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게 감각이지요”라고 박영훈 9단은 말한다. 감각은 훈련을 통해 몸에 배는 것이지만 하루 사이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감각이 잘 뜨는 날은 바둑도 잘 풀린다.

 46에서 어디를 둘까 막막한데 원성진 9단의 손이 47로 날아가 꽂힌다. 날카롭다. 통한다면 소득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가만 보니 39를 둘 때부터 원성진은 선수를 잡아 47을 두고 싶었다. 오늘은 감각이 잘 뜨는 날인가 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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