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양반문화 꼬집은 '양반동네 소동기'

중앙일보

입력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가 다나카 아키라(田中明)는 한국에 가려는 사람이 미리 익혀 둘 필요가 있는 최소한의 단어 중 하나로 '양반'을 꼽았다.

식사나 쇼핑을 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일상생활이나 농담에서 여러 뉘앙스를 담아 주고 받는 이 단어를 몰라서는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기회를 놓쳐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양반문화'가 우리 의식 구조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재일교포 학자 윤학준씨의 '양반 동네 소동기'는 몇년 전 우리네 양반 문화를 구수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다뤄 화제가 됐던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를 대폭 개정, 증보한 글이다.

특히 '소동기'란 표현을 쓴 것은 새로 붙인 1부의 내용 때문이다.

'양반 소굴'인 안동 출신의 저자가 전작 출간을 전후로 "감히 우리 가문을 욕되게 했다"며 고향의 몇몇 집안으로부터 출입 금지를 당하고 친구로부터 절교장을 받았던 일, 한 가문 출신 변호사에게 고소까지 당할 뻔 한 일 등 일련의 소동 얘기다.

'친구와 몇몇 문중에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진의를 설명, 옛정을 되찾으려는' 의도라지만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다만 다소 장황한 것이 흠.

2부 '현대양반고(現代兩班考)'와 3부 '역사에 얼룩진 한국'은 전작에서 다뤘던 양반에 관한 많은 일화와 묘지 시비와 같은 문중간 '전쟁' 얘기를 다시 한번 감칠맛 나게 풀어놓았다.

현재 호세이대학 국제문화학부 교수인 저자는 20대 초에 일본으로 건너가 한때 조총련에 참가하기도 했던 인물. 일본어로 낸 '온돌야화' 등이 이 책의 초본격이며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등의 일본어판 감수를 맡기도 했다.

이 책에 언급된 몇몇 가문 사람들에겐 일부 내용이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양반문화'에 대해 이같이 재미있는 '문화인류학적 보고서'는 그리 흔치 않다.

김정수 기자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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