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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경력 없이도 대법관 된 52세 싱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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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관은 ‘선량한 행동’을 하는 한 종신 임기를 누린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 법사위 청문회와 상원 본회의 의결 절차를 거친다. 지명 시 이념 성향, 종교, 인종 등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전통이 있다. 1789년 설립된 이래 연방대법원 구성은 대체로 WASP(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와 남성이 주력이었다. 흑인은 1967년 서그우드 마셜이 처음이며 현 클래런스 토머스까지 2명뿐이다. 여성은 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를 시작으로 모두 4 명이며 나머지 3명은 재직 중이다. 현재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법관 9명 중 개신교도가 한 명도 없다. 가톨릭이 6명이고 나머지 3명은 유대교다. 다만 보수 5, 진보 4의 정치성향 구도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

첫 흑인 대법관의 보좌관으로 출발
유대인의 대법관 진출은 19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보헤미아(체코)계 유대인이며 노동법 전문가인 루이스 브랜다이스를 첫 유대인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다. 유대인 대법관은 브랜다이스를 포함해 모두 8명이다. 대체로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했다. 단 한 명의 예외는 공화당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31년 지명한 포르투갈계 세파라디 유대인 벤저민 카르도조다. 현재 3명의 유대인 대법관이 재직 중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2.2 %에 지나지 않는 유대인 인구로 볼 때 3명은 비중이 크다. 클린턴 대통령 임기 때 지명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여성·러시아계)와 스티븐 브레이어(독일계),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엘레나 케이건(사진)이다.

케이건은 60년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인에 많은 직종인 변호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유대식 교육을 받았다. 유대교 여성 성인식인 ‘바트 미츠바’(남성은 ‘바르 미츠바’)도 거쳤다. 랍비와 논쟁할 수 있을 수준으로 유대교 계율에도 밝다. 아버지와 같이 법률가를 지망한 그녀는 항상 유대인 대법관 펠릭스 프랭크푸르터의 좌우명을 옆에 두고 공부했다. 프랭크푸르터는 39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임명한 오스트리아 태생의 유대인이며 역대 미국 대법관 중 유일한 급진 사회주의자였다.

케이건은 고교 졸업 후 프린스턴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학사 논문에서 미국 사회주의의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이어 83년 영국 옥스퍼드대, 86년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88년엔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그우드 마셜의 보좌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91년 케이건은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로 임명됐다. 95년이 되자 백악관으로 자리를 옮겨 클린턴 대통령의 법률 자문관으로 일했다. 클린턴 임기 후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로 학계에 복귀하고 2003년엔 이 대학 최초의 여성학장으로 취임했다. 그녀는 학장 재임 중 4억5000만 달러(약 5100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리고 회사법·국제법·증권법·인터넷법·지적재산권법 등 새로운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영입해 교수진을 보강했다. 하버드대 로스쿨 학장 자격으로 2006년 방한했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시카고대 법대 교수 시절 처음 만났다. 2009년 오마바는 그녀를 송무담당 차관에 임명했다. 2010년 6월 진보성향의 대법관 존 폴 스티븐스가 고령으로 사임하자 오바마는 이 자리에 케이건을 지명했다. 오바마는 자신이 지명권을 행사한 2명의 대법관 모두를 여성으로 지명했다. 다른 한 명은 히스패닉(푸에르토리코)계인 소니아 소토마요르다.

판사 경력이 전무한 중도 진보성향의 케이건은 상원 청문회에서 자질과 전문성에 관해 집중 검증을 받았다. 그리고 동성애, 낙태 문제 등에 관한 입장 표명도 요구받았다. 그녀는 낙태 옹호단체와 동성애자 권익보호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선 총기 소지, 임신 중절, 동성결혼, 감세 등이 단골 정치 이슈다. 각종 선거에서도 이들 문제가 많이 거론된다. 2010년 8월 찬성 63표, 반대 37표로 상원 인준을 통과했다. 독신인 케이건은 2010년 미국의 한 TV 매체가 선정한 ‘가장 이상적인 싱글 여성’ 순위에서 6위를 차지했다.

케이건은 현 대법관 9명 중 행정부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다. 진보성향에도 불구하고 보수인사와도 잘 교류한다. 흔히 법조인은 과거와 현재에 대해선 명석한 판단을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은 미흡하다고 알려져 있다. 법률이 지니는 태생적 보수성과 현실성 때문이다. 그러나 케이건은 법조인으로선 미래 예상과 법률적 접근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철학·사회적 현상에도 해박한데, 그녀의 개인적 교육 배경과 풍부한 상상력 덕분이다.

9명 대법관 중 행정부 가장 잘 알아
케이건을 포함한 현 대법관 진용은 명문 사학군인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그것도 하버드·예일대 일색이다. 지나친 엘리트 편중이란 비난이 있다. 미국엔 200여 개의 법과대학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하긴 하다. 과거엔 비아이비리그 출신도 대법관으로 종종 임명됐다. 또 이들 중 미국 헌법사에 획기적 기여를 한 인물도 적지 않다. 수정헌법 1조의 언론 자유를 절대적 권리로 정착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대법관 휴고 블랙(1937~71년 재직)은 앨라배마대 법대 출신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 로스쿨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몇몇 명문대 출신이 법률구조시장 진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정확한 수요를 예측하지 못한 과다 공급으로 많은 로스쿨 출신 젊은이가 두터운 취업문을 두드리다 좌절한다. 로스쿨 제도의 정착엔 물론 적지 않은 시일이 필요하다. 오로지 스펙만을 중시하는 국가 인재 충원 시스템의 고착은 자칫 사회적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전 외교부 대사 jayson-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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