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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세운 곽윤기 세계 1위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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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곽윤기가 20일 목동아이스링크에서 훈련을 마친 뒤 스타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다시 한번 춤을 춰 보고 싶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초등학교 1학년 때 키가 작아 맨 앞줄에 앉았다. 편식이 심해 몸도 약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영을 권했지만 비염 수술을 한 탓에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빙판을 택했다. 건강을 위해 쇼트트랙을 시작한 곽윤기(23·연세대)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딴 뒤 ‘시건방춤’ 뒤풀이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2010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이정수(23·단국대)와 승부조작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수 자격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

 곽윤기가 지난 11일 끝난 2011~2012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총 102점을 얻어 대표팀 후배 노진규(20·한체대)를 제치고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종합우승을 결정지은 3000m 결승에서 ‘날 들이밀기’를 한 노진규를 불과 0.006초 앞섰다. 곽윤기는 “결승선을 통과할 때 머리가 하얘졌다. 그동안 나로 인해 고생한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더라”고 회상했다.

 곽윤기에게는 ‘시건방춤’이라는 장난꾸러기 이미지와 함께 ‘짬짜미’라는 낙인이 따라다닌다. 2009년 4월, 밴쿠버 올림픽 대표 선발전 당시 일부 선수와 코치들이 모여 “우리 모두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협조하자”는 약속을 했다. 곽윤기는 1000m 준결승에서 넘어지려는 이정수를 잡아주며 순위를 조작했다.

 승부조작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곽윤기는 떠올리기 싫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춤추고 머리 스타일도 특이하게 하고 다녔더니 ‘그것 봐라, 그렇게 설치고 다니더니 일낼 줄 알았다’는 식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고 답했다. 그는 “3년 징계 결정이 났을 때는 은퇴할 생각까지 했다 ”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대한체육회는 재심사 끝에 선수 자격정지를 3년에서 6개월로 줄여줬다.

 곽윤기는 ‘선수로서 성공해 안 좋은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다짐 속에 스케이트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곽윤기의 개인훈련을 돕는 송재근 감독은 “윤기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평소 훈련량이 많지 않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가장 많은 훈련을 소화했다. 독해졌다”고 칭찬했다. 박세우 대표팀 감독도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곽윤기는 작은 체구(1m63㎝·58㎏)에서 나오는 순간 스피드가 뛰어나다. 초반에는 뒤에서 따라가다 중·후반 치고 나오는 편이다. 박세우 감독은 “추월하는 능력은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처음부터 선두로 치고 나와 경기를 이끈다. 체력이 좋아지고 자신감도 높아진 곽윤기는 2011~2012 ISU 월드컵 시리즈에서 금메달 5개를 따냈다. 주종목인 1000m에서는 네 차례 우승했다.

 곽윤기의 다음 목표는 2014 소치 겨울올림픽 개인전 우승이다. 곽윤기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거다. 올림픽 금메달로 나를 믿고 기다려 주신 분들께 보답하겠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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