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성과와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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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 세계에는 1600t의 고농축우라늄(HEU)과 500t의 플루토늄 등 12만6000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이 산재해 있다. 이런 물질들이 잘못 관리돼 비(非)국가 단체의 손에 들어가 테러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국 정상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핵안보정상회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2010년 워싱턴에서 첫 회의가 열렸고, 두 번째 회의가 26~27일 서울에서 열렸다. 53개국 정상 및 정상급 수석대표와 4개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워싱턴 회의에서 제시된 포괄적 과제를 실천방안으로 구체화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폐막에 맞춰 발표된 ‘서울 코뮈니케’에는 무기급 핵물질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하고, 원자력 시설에 대한 물리적 보호를 강화하고, 핵물질의 불법적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계획이 담겨 있다. 선언적 성격에 그쳤던 1차 회의 결과가 서울회의를 통해 보다 구체화됨으로써 핵 테러 방지라는 목표에 한 발 다가서게 된 걸로 본다. 핵물질을 감축하거나 폐기하고, 감축과 폐기를 약속하는 나라가 늘고 있는 점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회의 참가국들은 2013년까지 자발적인 핵물질 감축과 폐기 노력을 지속함으로써 핵무기 수천 개 제조 분량의 HEU를 감축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핵 없는 세상’의 비전은 핵안전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핵 보유국들의 핵 군축과 더불어 핵무기 확산을 막는 비확산 노력 등 세 가지가 동시에 병행돼야 한다. 핵 군축과 비확산 문제를 제쳐놓고 오로지 핵안전 문제만을 다루는 것은 핵안보정상회의의 근본적 한계다. 합의 결과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핵물질 감축이나 폐기 약속도 각국의 자발적 이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닌 실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국제안보 분야의 세계 최대 정상회의를 주관해 큰 탈 없이 마무리한 것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외교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소중한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