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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길 칼럼

18대 국회가 저무는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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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수길
주필

“우리가 안 싸우면 국민들이 거리에서 싸워. 국회는 사회의 갈등이 반영된 곳이야.”

 국회에서 몸싸움이 크게 벌어졌던 날, 선배 의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홍정욱(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 자정 능력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고 말한다. 40대 초반의 엘리트인 그는 지난해 말 스스로 더 이상 국회의원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초선의원으로서의 4년이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기에.

 “국회는 거리의 싸움을 대신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의 이해와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곳이어야 하는데, 당론 맞대결 구도 속에서 소신과 전문성은 공허한 퍼덕임일 뿐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곧 칠순인 강봉균(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른바 ‘정체성 검증’ 와중에 4·11 총선 공천을 받지 못하자 곧바로 정계 은퇴 뜻을 밝히며 탈당했다. “정치에서 손을 털 계기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던 경험을 가진 노련한 경제 관료 출신인 그는, 그러나 국회 걱정에 대해서는 손을 털지 못한다.

 “18대 국회에서는 ‘거수기’와 ‘무조건 반대’의 몸싸움으로 국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19대 국회는 그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번에 야권연대가 다수당이 돼도 결코 무리한 입법을 밀어붙이는 횡포를 부려서는 안 된다. 또다시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50대 중반으로 77학번 운동권 출신인 김성식(무소속) 의원은 19대 국회 진출을 위해 다시 뛴다. 언론이나 동료 의원들에 의해 18대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가장 잘한 의원으로 여러 번 선정된 적이 있는 그가 정작 18대 국회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박하다.

 “법에도 없는 당론 앞세우기에 각 당 소신파와 협상파의 몸부림은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면서 국익과 국민의 삶에 대한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그는 친이·친박 갈등을 보다 못해 당 개혁을 주문하며 지난해 말 탈당했다.

 18대 국회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세대가 다르고 소속 당이 다르지만, 당론 맞대결로 파행하는 국회에서 투사 아닌 소신파·협상파가 되고자 했던 세 의원의 국회 평가는 같다.

 이렇게 저물어가는 18대 국회에는 아직도 405건이나 되는 정부 제출 법안들이 계류돼 있다. 이들 법안의 평균 계류 기간은 1년3개월하고도 조금 더 된다. 개중에는 2008년 11월에 제출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안’처럼 1100일이 넘도록 깔고 앉아 있는 법안도 있다. ‘심사의 우선순위가 낮다’는 것이 이유인데, 누가 보아도 심사 우선순위가 매우 높은 법안들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제정안, 자본시장법 개정안, 약사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 각 당이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지원, 서민 생활 편익 등을 내세우고 있거니와 이들 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은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고,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중소혁신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법안이다. 감기약 등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사법 개정안이 생활 편익을 위한 것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18대 국회는 5월 말까지다. 6월부터 19대 국회지만 여야 샅바싸움 속에 원 구성이 끝나려면 두어 달이 걸리니 8월 이후쯤에야 19대 국회가 열릴 것이다. 18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고, 19대 국회에 다시 상정해 처리하려면 또 언제 법안이 효력을 발휘할지 기약이 없다.

 요즘 온통 19대 국회에 누가 진출하고, 그 결과 여의도 판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로 날을 지새우지만 정말 걱정인 것은 19대에도 또다시 당론 맞대결의 몸싸움에 국회 본연의 임무인 입법 활동은 뒷전인 꼴을 국민들이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복지·민주·평화 등 거창한 소리 이전에 각 당은 4·11 총선이 끝나면 5월 말 전에 국회를 열어 미룰 수 없는 법안들을 여야 합의로 처리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리고 19대에서는 어떻게 하면 당론 맞대결의 몸싸움을 피할 수 있을지, 국회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이미 국회 운영위에는 국회 선진화 관련법들이 계류 중이다. 국회의장 직권 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법안 상정·처리 기한을 정하는 등의, 이른바 ‘몸싸움 방지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법만큼은 통과시키고 가야 한다. 그게 유권자에 대한 도리다.

김수길 주필